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

인간의 본성은 본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팽배하게 대립하는 가운데서 만나게 된 성무선악설의 의미는 그렇게 한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이론을 싹틔우며 놀라움을 전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특성이 고유함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본성의 의미를 표현하게 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85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 박지리가 집필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어 내려가면서 성무선악설을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국가의 핵심이 됨으로써 권력은 물론이고 부와 명예까지 손에 쥔 사람들이 거주하는 1지구부터 12월의 폭동으로 인해 버림받은 땅이 된 9지구까지, 계급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진 사회 속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리며 변화하는 한 소년의 삶을 통해 인간 본성의 의미와 생의 이유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1지구 최고의 기숙학교 프라임 스쿨의 모범생으로 살아가던 다윈 영이 아버지 니스 영과 할아버지 러너 영의 과거를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 달라지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롭기 그지 없었다. 9지구 후디에게 살해당한 제이 삼촌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려는 루미를 돕던 와중에 발견한 가족들의 치부를 앞에 두고 선택을 결행한 다윈 영 본인의 인생은 작품의 2막을 알리는 전초전과도 같았다. 프라임스쿨에선 아웃사이더로 불렸지만 그곳에서 다윈이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레오와의 어긋난 관계로 인한 결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다윈의 선한 심성이 사건의 절정에 다다라 악으로 물들어가며 새롭게 재탄생되던 순간은 그런 의미에서 더 뜻깊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알지 못함으로 인해 터져 나오지 못하고 감춰져 있던 인간의 성질이 작은 도화선을 만나며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게 되면, 이로 인한 파문은 엄청나기 마련이니까. 무로부터 발현되는 선과 악은, 그 어떠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이기에 파급력이 더 어마어마한 법이다.


다윈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설을 되짚어 보게 돼 의미있는 한때였다. 정답은 없겠지만, 살다 보니 스스로가 제시하는 기준에 변화가 찾아오긴 하더라.


책의 제목에 모든 것이 담긴 작품으로 스릴러적 요소와 드라마적 요소가 세련되게 결합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소설이 박지리 작가의 유작이라고 해서 안타까웠다.

 

지금까지 읽어 본 이야기들이 소재를 포함해 저마다의 개성이 남달랐기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못지 않게 비극적인 선택으로 결말을 지어버린 작가의 일생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참담함이 앞서지만, 작가의 책을 즐겨 읽었던 독자의 입장에서 박지리의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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