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Fingersmith), 두 여자를 둘러싼 흥미로운 반전 미스터리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는 2016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 사실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다. 두 여자를 둘러싼 흥미로운 반전 미스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감으로써 읽는 내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그 속에서 기대 이상의 재미와 놀라움이 담겨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 제목인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에 도둑을 뜻하는 은어였다고 한다. 손가락을 이용해 물건을 훔쳐내는 소매치기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한데, 수전 트린더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아의 신분으로 석스비 부인의 보살핌 아래 이러한 도둑들 틈바구니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젠틀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가 찾아와 부유한 상속녀 아가씨 모드의 구혼을 위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다. 시골 영지에서 숙부와 함께 살아가는 아가씨의 하녀가 되어 일의 성공에 힘을 실어주면 적절한 보상을 해줄 것을 약속, 그리하여 모드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전 트린더가 아닌 수전 스미스가 되어.
책의 내용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와 3부는 수(수전)의 시점, 2부는 모드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두 여자의 놀라운 인생을 확인하게 도왔다. 숙부의 지배 하에 고통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던 모드가 수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맞닥뜨리는 낯선 감정이 둘을 사로잡으며 사랑으로 치닫는 과정은 단순한 동성애적인 요소로의 표현을 넘어선, 삶의 고통을 극복하도록 이끄는 환희로 발현되며 세밀한 감정 표현에 집중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책에 있어서 동성애는 단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박진감 넘치게 이어지는 끝없는 반전의 소용돌이가 앞선 이야기를 잊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으므로, 1부의 마지막에 포효하는 수의 외침을 뒤로 하고 2부를 통해 모드의 속사정또한 확인하게 되면서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3부에선 어땠을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을까 싶다.
놀라운 반전과 함께 지켜봐야 했던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 배신과 거짓은 진실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겨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수와 모드, 젠틀먼과 석스비 부인의 얽히고 설킨 관계의 비밀이 전한 충격은 모드의 숙부가 행해오던 일의 잔혹함까지 다시금 상기시키며 긴박감을 더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수의 가명을 수전 스미스로, 핑거스미스에서 이름을 가져 온 젠틀먼의 센스도 재밌었다.
영화는 접하지 않았으나 엄청난 페이지로 구성된 장편소설의 위대함을 깨달은 바, 당분간은 원작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듯 하다. 수동적으로 이끌리듯 살아온 두 여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고 조금씩 갇혀 있던 틀을 깨고 나와 주체적으로 변화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기에, 이로 인한 결말 또한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색다른 미스터리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해서 역시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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