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돈키호테 :: 유니버설발레단이 선사한 희극적 묘미에 빠져들다
7월의 일요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다. 세르반테스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이었던 돈키호테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등장하며, 산초와 함께 모험을 하던 중 만나게 된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됨으로써 색다른 흥미로움을 경험하도록 도왔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공연에 앞서 관객들이 마주하게 될 작품에 대한 소개를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돈키호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안무 또한 미리 알고 볼 수 있어 유익했다. 그리하여 뜨거운 박수와 환호와 함께 본격적인 발레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술집 주인 로렌조는 딸 키트리가 돈 많은 귀족 가마슈와 결혼하길 바라지만 그녀는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때 두 사람이 방해꾼들의 끊임없는 훼방에서 벗어나고자 기지를 발휘함과 동시에 돈키호테와 산초가 힘이 되어주면서,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즐겁고 신나는 발레 공연이 완성되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는 총 3막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에서도 2막이 20분으로 길지 않았다. 2번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150분 동안 공연이 이루어졌는데 보는 내내 깊이 몰입하게 됨에 따라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 막이 내리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날 공연에서 주역으로 나선 이들은 위와 같았다. 키트리 역의 조이 아나벨 워막 발레리나, 바질 역의 강민우 발레리노. 두 주인공 외에도 1막, 2막, 3막이 펼쳐지는 동안 정말 많은 무용수가 활약하는데 캐스팅 보드에는 키트리와 바질이 전부였어서 이 점은 좀 보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고 막이 올랐다 내릴 때마다 캐릭터의 변화가 있어 사진 첨부가 무리라면, 배역과 이름만이라도 적어놨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에 남은 무용수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무대 앞쪽으로 나와 열광하는 관객들에게 화답하던 주인공들은 왼쪽부터 산초판자(이택영), 돈키호테(곽태경), 로렌조(제임스 알렉산더 프레이져).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맨 오른쪽엔 가마슈(루이스 엘리엇 조지 가드너)가 자리를 잡았다.
돈키호테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기골이 장대해서 이로 인한 재미가 남달랐고, 머털도사를 떠올리게 만들던 산초판자의 더벅머리와 가마슈의 코믹한 얼굴 분장이 기억에 남았다. 로렌조는 3막 2장에서 맞이하게 된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에서 하염없이 딸을 바라보며 눈물 콧물을 쏙 빼던 열연이 도드라졌다.
샛노란 의상을 갖춰 입은 에스파다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격정적인 안무가 강렬함을 자아냈는데, 손에 든 천을 사용한 박력있는 회전이 어우러진 댄스의 조화로움이 절로 박수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거리의 무희로 모습을 드러낸 한상이와 에스파다의 춤, 큐피드로 분해 신비로운 움직임을 선보인 박수경 발레리나도 눈에 들어왔다.
부채의 사용에 따른 감정 표현과 집시들의 춤, 스페인 특유의 정열이 담긴 민속춤은 물론이고 화려한 의상과 무대 역시도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음악이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아니라는 점이 옥의 티로 남았다.
조이 키트리는 자신이 맡은 동작을 해냄에 있어 안정감이 돋보여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선 섬세한 감정의 표출이 보여졌으면 싶을 때가 존재하긴 했는데 이건 공연이 계속됨에 따라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32회전 푸에테가 머리 속에 깊이 남게 됐고, 커튼콜에서 파트너를 향해 고마움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나까지 괜히 더 뭉클함이 밀려왔다.
참고로, 이날 공연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무용수는 강민우 바질이었다. 실은 작년에 이 작품을 관람하고자 티켓을 예매했다가 강민우 발레리노의 부상으로 캐스팅이 변경된 것을 알고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기에, 더 기뻤다.
무대에 나타나자마자 속도감 넘치는 회전과 기대 이상의 점프력으로 박수를 이끌어냈다. 여기에 키트리를 향한 아름다운 미소,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쟁취하고자 재치 넘치는 계획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니 발레리노의 뛰어난 역량에 잘생김이 더해져 금세 빠져들고야 말았다. 인터미션 땐 같이 간 친구와 잘생겼다를 연달아 외칠 정도였으니 뭐……그래도 조금 위험했던 순간을 잘 넘겼다. 하마터면, 입덕할 뻔 했어. 나대지마, 심장아!
1막의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원 핸드 리프트에선 감탄사를 내뱉지 않기가 오히려 힘들었다. 위로 올라가는 여자 무용수와 아래에서 받쳐주는 남자 무용수, 둘의 호흡이 매우 중요한 동작이었는데 무사히 임무를 완수해낸 순간의 공연장에선 환호와 박수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바질과 키트리 모두, 브라보!
즐길거리가 풍성한 놀이공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유니버설발레단이 들려주던 돈키호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시간이었다. 유쾌하고 정열적인 희극 발레의 묘미를 제대로 경험하게 해줬던 찰나를, 강민우 바질의 성공적인 복귀 무대를 직접 맞닥뜨리게 돼서 행복했던 주말 오후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더운 하루였지만, 이렇게나 좋은 공연을 언제든 만나는 게 가능하다면 충분히 감수할 자신이 있다. 발레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공연 자체는 참 좋았는데 커튼콜이 예상 외로 짧아서 시원섭섭했다. 무더위에 지쳐 무겁다는 이유로 카메라를 안 가져온 건 조금 후회가 됐고, 공연은 확실히 앞자리에서 보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을 나왔다. 드디어, 강바질을 봤어!!!!!!!
정통 발레도 좋지만 희극 발레만의 유쾌함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 그런 의미에서 더운 여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던 무대 위에서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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