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 야구를 통해 만나 본 김건덕 감독의 삶과 청춘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3년을 지나 재연으로 무대에 다시 올랐다. 2014년에 처음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으로 선정됐을 때를 제외한다면, 201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재공연 및 같은 해에 진행된 초연을 모두 관람했던 관계로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된 너빛속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야구팀이 존재해서 더더욱, 야구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이 탄생된 것이 반가웠고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제작되었다는 점 역시 뜻깊게 여겨졌다.
직접 공연을 접했을 때 그라운드를 멋지게 구현한 무대도 마음에 들었고, 캐스팅된 배우들의 출중한 실력 역시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빛속은 애증의 공연으로 기억되어야만 했다. 우수 재공연으로 첫 관람을 했을 당시, 섬노예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인해 충격을 금치 못한 데다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초연은 이 부분을 수정하는데 성공했지만 완벽히 들어냈다고 보기에는 힘든 편이라서 역시나 얼굴이 찌푸려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올해 마주하게 된 재연에 대한 감정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꽤나 많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되어 예전에 경험했던 복잡한 심경은 느끼지 않아도 돼 다행스러웠다.
[CAST]
김건덕 : 신재범
이승엽 : 이호석
홍감독 : 윤석원
윤효정 : 랑연
덕호/캐스터 : 원성준
창수/해설 : 최신우
민석/멀티 : 배홍석
너빛속 재연은 비운의 천재 투수로 남아버린 김건덕과 슈퍼스타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타자 이승엽의 학창시절을 통해 청춘과 야구를 향한 꿈을 멋지게 보여주며 포문을 열었다. 승엽과 달리 그토록 원했던 야구선구가 되지 못한 건덕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 맞닥뜨린 절망과 희망을 통해 꿈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였다.
신예들을 대거 캐스팅함으로써 너빛속이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기를 바랐던 제작진의 의도에 맞게 새로운 얼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로 인해 풋풋한 청춘의 감성이 잘 살아났던 것이 재연만의 강점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함께 확실히 야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구성한 점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연출이 바뀜으로써 이전에 좋았던 부분까지 변화를 맞이해야 했던 점은 아쉽다. 수능을 위해 건덕과 승엽이 시청하던 EBS 방송의 강사가 둘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다 보니 재미가 덜했고, 분신사바가 이뤄지던 도중에 홍감독이 야구 방망이를 무대 가운데에 멋지게 세우면서 감탄을 자아내던 장면도 빠져서 허전함이 전해져 왔다.
섬노예 장면만 제거해서 보완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를 포함해서 인상적인 포인트가 전부 빠져버려 솔직히 좀 허무했다. 너빛속 OST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게만 해줬더라도 괜찮았을 텐데, 출시될 당시에 스포일러가 될 것을 염려했는지 팥 없는 호빵처럼 중심 넘버들은 수록을 안 해줘서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도 한 곡이 아니라 여러 곡을!!! 알면서도 좋다고 산 내가 호갱이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배우들의 열연은 나쁘지 않았다. 윤석원 배우의 홍감독이 건덕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줘서 그게 참 좋았다. 입에 치약을 머금은 채로 내뱉던 대사들을 통하여 색다른 웃음 포인트를 선보인 점도 괜찮았다.
원성준, 최신우, 배홍석 배우는 여러 캐릭터로 분해 극에 양념을 더했는데 세 사람 모두 목소리에 개성이 넘쳐서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즐거웠다.
랑연 배우의 효정 역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굳이 여성 캐릭터를 이 작품에 넣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개연성을 배우 스스로가 부여해 탄생시킨 인물은 비중있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너빛속 주인공인 김건덕을 맡은 신재범 배우는 여보셔의 류순호로 활약할 당시에 본 적이 있어서 초면은 아니었다. 애기수노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기억이 나는데 군대를 다녀 온 지금도 여전히 어림이 묻어 나긴 했으나 연기나 노래적인 부분은 확실히 예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 흡족했다. 그 와중에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조금 더 독기 가득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싶었다는 거였다.
전체적으로는 맡은 역할과 싱크로율이 잘 맞아 떨어져서 재밌게 잘 봤다. 차기작이 발표된 만큼 뮤지컬 더데빌에서의 존 파우스트 또한 기대해 본다.
이승엽 역으로 출연한 이호석 배우는 처음 봤는데, 재범 건덕과의 케미가 상당했다. 공연 후 이루어진 커튼콜에서도 내내 건덕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꿀이 떨어져 이로 인한 호흡 역시도 돋보였다.
솔로 넘버를 소화할 때 음이탈이 날까봐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였다.
건덕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했던 야구를 통해 만나 본 꿈의 조각들은 이루지 못할 꿈으로의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한 메시지를 던지며 마무리가 돼서 의미가 있었다. 야구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의 생활을 해왔던 그의 삶 또한 가치가 없지 않았으므로.
재연이 오기 전 별세한 김건덕 감독의 유지를 받아들이는 공연이라는 포부를 밝힌 극이었던 만큼,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많은 관객들이 발견했으면 좋겠다.
포기하는 것이 쉽지만 포기하지 말라던 홍감독의 말. 꿈은 원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던 뼈 있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김건덕 감독의 삶 또한 이와 같았을 테니까.
인생은 야구와 같기에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라 믿는다. 꿈을 향해 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도왔던 너빛속 관람은 결국 자첫자막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소재 자체는 괜찮은데 이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여전히 매끄럽지 않아서 더 볼 자신은 없었다.
아, 그리고 이 말만은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JTN 아트홀 1관 공연장 음향......너무 별로다!
추가된 넘버도 몇 곡 있었는데 귀에 딱 꽂히는 편은 아니었다. 장면을 위해 안무가 새로이 장착된 부분도 살짝 오글거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커튼콜의 마지막 장면은 꽤나 뭉클했다.
이번 주가 막공인 걸로 아는데 배우들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나저나 너빛속......다시 또 올라올 수 있을까? 초연과 재연 상황으로만 따져 봐도, 공연 흥행을 위해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말이다.
다음에는 부디, 지루함 없이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멋지게 훔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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