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 원작의 현대적인 재탄생이 경험하게 한 제목의 아이러니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이 뮤지컬 <햄릿:얼라이브>를 통해 현대적인 분위기로 재탄생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명작으로 알려졌기에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궁금했는데, 공연의 막이 내리기 전에 만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2016년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었던 만큼, 이를 기념하는 공연이 특히나 많았는데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진행된 뮤지컬 <햄릿:얼라이브>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자체는 기존에 알아 온 원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대신, 모던한 분위기의 무대 연출과 조명 및 의상을 통해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낸 것이 눈에 띄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틀어 이 시대의 햄릿으로 지칭하며 우리가 지닌 고뇌 또한, 그가 고민했던 문제와 다르지 않음을 전하며 몰입도를 높였다.
공연 속에서 거울과 기둥으로 빛의 움직임을 다채롭게 선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연극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소품에 더해 만들어낸 시각적 이미지가 장관이었다. 이와 함께, 검은 상복을 입고 조의를 표해야 했던 아버지의 장례식장 풍경이 머리 위로 펼쳐진 우산을 접게 됨으로써 어머니와 숙부의 결혼식으로, 빠른 장면 전환을 이루어내는 찰나 역시 돋보였다.
고은성 배우의 햄릿은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년에 가까운 왕자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도를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어머니의 새로운 출발을 바라봐야만 했던 아들의 마음이 방향을 바로잡기란 결코 쉬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연기도 노래도 일취월장한 모습으로 대극장 무대의 주역이 된 은성 햄릿의 열연은 어머니 앞에서 증오와 애처로움을 동시에 쏟아낼 때, 사랑하는 오필리어 앞에서 진심과 다른 이야기를 토해낼 때 특히나 압도적이었다. 미친 척을 하던 순간의 패기도 흥미롭게 다가왔고.
다만, 미치광이인 척 하는 장면에서 입고 나온 스마일 티셔츠와 사과머리는 영 아니었다. 굉장히 단편적이면서도 일차원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어색함이 묻어나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가장 좋았던 넘버는 햄릿과 선왕이 조우하게 되면서 비극의 시작을 알린 "복수를 해다오"였다. 아버지가 동생 클로디어스로 인해 죽음을 당했음을 알게 된 햄릿의 분노는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고, 원한을 풀지 못해 죽어서도 곁을 맴도는 아버지의 유령 또한 마찬가지였음을 임팩트 있게 전하는 가사와 멜로디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런 이유로, 둘이 하나가 되어 복수를 다짐하며 탄생시켜 나가던 듀엣곡은 환상적이었다. 고은성 배우의 햄릿과 양준모 배우가 분한 선왕이 들려주는 목소리의 조합도 훌륭했다.
더불어,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을 재현한 연극을 펼쳐 보였을 때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형이었던 엘시노어의 선왕에게 용서를 구하면서도 자신이야말로 이 자리의 주인이라며 왕관을 머리에 쓰던 클로디어스의 "날 용서하소서" 역시 귀를 사로잡았다.
양준모 배우의 카리스마는 클로디어스가 감내해야 하는 죄책감과 더불어 야망에 불타오르는 캐릭터를 적절히 아우르며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왕의 자리가 지닌 무게의 무거움은 물론, 그것을 얻기 위해 저질러야 했던 악행이 왕관을 들어올린 두 손에 담긴 듯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기억에 남는 넘버는 이것이 거의 전부였다. 공연 개막 전에 공개된 넘버인 "사느냐 죽느냐"의 경우에는 그냥 들었을 땐 괜찮다 싶었는데, 막상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거트루드 역의 문혜원 배우는 넘버가 절정에 달할 때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진하게 울렸고, 오필리어 역의 정재은 배우는 서서히 정신을 놓아가던 과정에서의 절절함이 공감을 불러 일으켜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실 원작 희곡 자체에서 여성 캐릭터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소모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새로움을 기대해 봤으나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가자 괜시리 씁쓸함이 더해지기도 했다.
400년 전의 희곡을 기반으로 해서 무대 위에 올린다고 했을 때, 그것도 창작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입는다는 소리에 눈에 보이는 부분을 넘어서 현재를 대변하는 속깊은 내면을 담아내는 메시지를 경험하고픈 마음이 없지 않았기에 더 아쉽다.
공연 초반보다 많이 다듬어진 것이라고는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 와중에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이 굉장히 닮아 보여서 깜짝 놀랐다. 김보강 배우의 레어티스도 반가웠으며, 많지 않은 분량이나 제 역할을 다했기에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의상의 세련됨도 나쁘지 않았다.
햄릿의 유일한 조력자 호레이쇼의 역할도 상당했고, 맡은 임무를 다했다고 여겨진다. 최용민 배우는 연극에서만 만났어서 이 작품에서도 연기만 할 줄 알았는데, 넘버를 소화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 이 또한 놀라움을 더했다.
[햄릿 : 고은성 / 클로디어스 : 양준모 / 거트루드 : 문혜원 / 호레이쇼 : 최용민]
배우들의 열연은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도 역시나 빛났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 작품의 매력을 알리기란 역부족임을 깨달으며 공연장을 나와야만 했다.
한 마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시공간의 초월만을 경험하게 하며 텍스트만 그대로 옮겨 온 듯했던 공연이었다. 이렇게 느낀 데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제목에 포함된 '얼라이브'의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짐과 동시에 결말에 대한 의문이 머리 속에 가득 차버려서 내 마음 역시 까맣게 변해 버렸다.
참고로, "내 삶의 이유가 그의 죽음 뿐이라니..."라고 한탄하던 햄릿의 절망이 이날 공연의 명대사로 남았다. 복수가 존재의 이유라면 그 누구도 절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에 다다라 태아처럼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던 햄릿의 모습이 그래서 더 짙은 여운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좋았던 포인트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많았음에도 커튼콜의 시간이 진행되며 배우들이 한 명씩 인사를 해오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것은, 공연을 준비해 온 날들에 대한 고마움이 박수와 함께 번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으므로. 덧붙여 만약에 재연이 올 거라면 제발, 많은 수정과 보완을 거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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