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 형제가 주고 받은 편지에 담긴 예술의 결정체
삶의 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가능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림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캔버스를 통해 재능을 꽃피웠고, 결국에는 죽음의 찰나를 사랑하는 예술과 함께 맞이하며 모든 것을 불태운 예술가로 기억된다.
그런 이유로 화가의 삶을 재구성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인기인데, 오늘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지방투어를 기념하며 서울에서 진행된 지난 공연의 추억을 풀어볼까 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주인공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활용하며 춤추는 별을 그린 화가로, 달과 별의 하모니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로 그를 조명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진심으로 나눴던 동생 테오 반 고흐와 주고 받은 편지 속에서 만나게 된 예술가의 생애는 여전히 특별했고,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울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테오 반 고흐 : 유승현
900통의 편지가 엮어나가는 이야기는, 테오가 형을 위한 유작전을 열기 위해 그림과 더불어 주고 받은 대화를 정리함으로써,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려 나감에 따라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형의 하나 뿐인 후원자로 화가를 그림으로 이끌었던 인물이자 그가 믿었던 단 한명. 테오 반 고흐는 공연 속에서도 든든하게 자신의 자리를 다하며 동생 이상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엄격했던 형제의 아버지, 그림을 가르친 스승 안톤, 우정을 나눈 친구 고갱까지 장면마다 필요한 모든 캐릭터를 도맡아 보여주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2인극이지만 2인극 같지 않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테오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하는 형이 부담스러울 때가 없지 않았을 텐데도 묵묵하게 후원을 계속했던 테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승현 테오는 초연부터 봐왔던 익숙한 캐릭터에 비해 어린 티가 도드라졌고, 이로 인해 형과의 케미가 더더욱 살아남을 확인케 했다.
상승페어라는 애칭이 잘 어울리는 뉴캐스트의 공연은, 귀여우면서도 애틋함이 묻어나는 형제애가 돋보여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기도 했다. 덧붙여, 올해 내가 마주했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여러 페어 중에서 가장 취향에 들어맞았던 배우의 조합을 선사한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형을 꼭 붙잡고 미소 짓는 동생의 표정과 결연함이 눈에 들어오는 화가의 단호한 눈빛이 어우러져 보여지는 돈독함 또한 눈부셨다. 커튼콜에서 울려 퍼지는 '부치지 못한 편지' 속 둘의 끈끈한 우애는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도왔다.
빈센트 반 고흐 : 조상웅
'From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상웅 빈센트는, 귀엽게 느껴지던 부시시한 헤어 스타일과 달리 결연한 자세로 책상에 앉아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내려갈 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황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 변화하던 캐릭터적 분위기와 무대 위의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화사한 색채가 창조하는 세계에 빠져들며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좋았다. 비글스러움이 담뿍 묻어나는 배우만의 개성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자화상'에서 자조적인 기운을 뿜어내면서도 경쾌한 붓터치를 선보여 화가의 면모를 잃지 않았던 것도 흥미로웠고, 광적인 집착으로 말미암아 정신을 놓아버리게 될 때쯤엔 마음 속에 가득 차오르는 연민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기에 더해 공연장을 깊이 울리는 노랫소리도 압권이었다. 아담한 체격을 넘어서는 성량과 목소리의 힘이 절로 귀기울이게 할 정도였다. 덧붙여, 별이 박힌 것처럼 순간 순간 반짝거렸던 두 눈동자의 움직임 또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가 들려준 생에 있어 가장 좋았던 대사는 바로 이거였다.
"참 열심히도 살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 온 모든 시간을 압축할 수 있는 단 한 마디. 이 말이 그의 입에서 절절하게 쏟아져 나오자 오래도록 감춰두었던,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 복받치는 감정과 끊임없는 오열이 곁을 맴돌며 다른 어떤 것에도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끝을 앞두고 토해낸 진심이라 더더욱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초연부터 3D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영상기술을 적용, 사진과 같이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이 생생하게 움직이며 살아 숨쉬는 시간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이 공연만의 강점이다. 단순히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손끝에서 붓으로, 벽면이 캔버스가 되어 생명을 얻은 그림의 활기가 극에 재미를 더했다.
넘버도 좋고, 캐스팅도 괜찮고, 뮤지컬에 적용한 기술 또한 놀라움을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나 평면적인 스토리 구조는 아쉬움이 되어 때때로 루즈함을 견뎌내게 만드는 단점으로 자리잡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예술가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를 재구성했으나 조금 더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해 단조로움을 떨쳐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공존하기에 찾게 되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그 와중에 배우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혀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어 그건 참 다행스러웠다.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로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노래로, 마음으로 전하던 형제의 시간. 둘이 주고 받은 편지에 담긴 예술의 결정체를 만날 수 있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는 더더욱, 친형제 같은 에너지가 제대로 확연히 전해져 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성공적인 창작 뮤지컬로 계속해서 무대 위에 오르고 있는 데다가 중국 무대로의 진출을 통해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기대해 보려 한다. 초연부터 잊지 않고 챙겨보는 동안 처음보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진해지는 작품의 결에 물들어가며 감정을 이입하게 됐고, 이로 인한 여운이 짙게 배어남을 깨달았기에 여기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언젠가 나도 고흐처럼 생의 말미에 닿게 된다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꿈꾸며, 그들의 얘기를 다시금 상기시켜봐야겠다. 생명을 걸고픈 무언가를 찾아낼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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