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 한사람만을 향한 사랑의 애잔함을 담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원작 영화를 토대로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려 재탄생시킴으로써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특유의 아련한 감성이 마음을 사로잡긴 했지만 무대 위에서 영화 속 장면들이 거의 비슷하게 표현됨에 따라 달라진 시대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으로 인한 불편함이 존재했는데, 올해 삼연에선 작정하고 다듬어 보완했음이 느껴져 만족스러움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오직 단 한사람만을 위한 사랑의 애잔함이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치닫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현실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설정과 결말로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가끔은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때가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가능했던 유일한 선택임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행복을 빌어줄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의 운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그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인우와 태희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거듭되는 연결고리를 보여주며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게 도왔고, 비 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든 여자와 우산을 꼭 쥔 채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시간은 조금씩 예상치 못한 순간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의 운명적 러브 스토리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써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음악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공연으로 이 작품을 꼽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인데 인우가 부르는 "그대인가요", 태희가 들려주는 "혹시 들은 적 있니", 둘의 듀엣곡인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을 포함한 모든 넘버들이 잔잔한 멜로의 감성에 빠져들게 도우며 깊은 울림을 전했다.


 

메인 테마곡인 왈츠를 중심으로 1막은 인우와 태희, 2막은 현빈과 인우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스토리 전개는 단순히 사랑의 두근거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기에 견뎌내야만 하는 감정들을 제대로 녹여냄으로써 오로지 무대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게 도왔다.

 

뿐만 아니라 빛이 반사하여 비치는 것을 일컫는 반영 효과를 무대 위에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머무는 순간의 움직임이 그림자의 생생한 빛깔을 통해 존재감을 깊게 표출시킴은 물론, 번점만의 신비로운 감성이 곳곳에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돼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공연 속 조명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선이었다. 인우가 분필로 칠판에 그은 한 줄의 선으로부터 비롯되던 생의 인연과 이로 인한 관계의 변화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내면을 파고들었다. 특히, 인우를 향한 비난이 쏟아질 때 그에게로 화살처럼 날카롭게 내리 꽂히던 선들의 잔혹함이 선명함을 더했다.

 

그리고, 라이터의 불이 켜지면서 오롯이 현빈만을 위해 켜지던 조명으로 인한 스포트라이트가 새로운 순간을 위한 전환점으로 비춰짐으로써 의미심장함이 도드라지기도 했다.

 

2막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억들"을 통해 태희의 기억이 현빈에게로 온전히 스며들며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 속 인물 전환의 묘미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극적인 분위기가 화룡점정에 다다르는 순간이므로, 역시나 놓쳐서는 안될 명장면으로 남았다. 배우들이 신속 정확하게 움직임에 따라 창조되는 완벽한 장면의 탄생은 2층 객석에서 내려다 보게 되면, 나름의 트릭을 한눈에 마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이에 따른 재미는 덤이었다.

 



[CAST]

인우 : 이지훈

태희 : 김지현

현빈 : 이휘종

혜주 : 이지민

대근 : 최호중

기석 : 진상현

교수 & 인우아내 외 : 이다정

남학생 & 여학생 : 강기헌, 이예슬, 하도빈, 이지숙, 박철, 임지혜


연기와 노래의 밸런스가 적절히 어우러졌던 지훈 인우와 사랑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 당차고 곧은 마음이 돋보였던 지현 태희의 합이 좋았고, 열일곱 소년다운 이미지가 돋보였던 휘종 현빈 역시 캐릭터에 잘 맞는 열연으로 극에 조화로움을 선사했다. 연극이 아닌 뮤지컬을 통해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가장 궁금했던 휘종 현빈의 노래도 꽤 괜찮았다.

 

이번 번점에서는 현빈이에게 마음이 가장 많이 갈 수 밖에 없었기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그에게로 하염없이 들이닥치던 장면이 유독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인지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인우를 바라보며 애틋한 시선을 유지하던 현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우와 현빈의 화음이 어우러진 듀엣도 귀를 사로잡았음은 물론이다.

 

인우와 아내의 대립, 현빈과 혜주의 다툼이 무대 위에서 선처럼 이어지는 위치에 나란히 배치돼 보여지는 점도 눈길을 잡아끌었다. 인우가 현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친구에 대한 애정어린 걱정을 드러내던 기석과 현실을 직시하며 분노하던 대근의 대립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로 분한 6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호흡도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다만, 캐스팅보드에 그들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여학생, 남학생으로만 구분지어 표기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를 통해 만나 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아련함을 지닌 작품이었다. 공연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 번쯤은 관람하기 괜찮은 극이라고 생각한다.

 

1층보단 2층 좌석의 단차가 훨씬 좋은 극장이라 이날도 2층에서 관람을 했는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차라리, 공연장의 규모를 좀 더 줄여 소극장에서 번점을 올리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좋은 공연을 더 오래 보고픈 간절함이 없지 않으므로.




기본적으로 어떤 장르든,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번지점프를 하다> 만큼은, 영화보다 뮤지컬이 취향에 잘 맞았기에 이러한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 극이라고 확신한다. 배우들의 열연, 무대의 활용, 오감을 집중시키는 음악의 매력이 완벽했다.


재연 이후 5년을 기다려 만난 극이 변화를 꾀함으로써 한층 더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되어 매우 반갑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계속될 운명적인 사랑이 전하는 애절함의 시간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 두어야겠다.


번점 삼연은 여름의 끝자락과 함께 마무리가 됐지만,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랑의 애달픈 운명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은 다시금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때는 OST도 함께 와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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