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장 완창판소리 3월 [김준수의 수궁가 미산제] :: 토끼와 별주부의 모험

2018년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3월 24일, 소리꾼 김준수의 수궁가 미산제를 통해 포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지기 전,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예술감독이 무대에 등장해 이날의 주인공을 소개함과 동시에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들려주며 호기심을 돋우었다. 



김준수는 국립창극단의 단원이자 국악계의 아이돌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며 유명세를 타고 있던 와중에 소리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고히 함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소리 본연에 집중하고자 생애 첫 완창판소리에 도전, 재치 넘치는 소리의 향연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공연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소리꾼 김준수가 완창한 수궁가는 명창 박초월이 완성함으로써 그의 호를 딴 미산제로 불리는 작품으로, 폭넓은 음역대 안에서 디테일의 섬세함과 기교적인 화려함까지 확인할 수 있어 보고 듣는 재미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수와 창자가 호흡을 맞추는 무대 또한 전통적인 멋을 살린 분위기가 도드라져서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설렜다. 적벽가를 통해 국립창극단의 존재와 창극이라는 장르를 제대로 접하게 됐고, 제갈공명으로 열연한 김준수의 소리에 푹 빠져든 이후 완창판소리를 기다리게 됐는데 올해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뜻깊었다.


수궁가 미산제 한 바탕이 울려퍼지던 공연장은 고수의 북과 창자의 소리, 관객의 추임새가 어우러지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특히, 관객들의 구성진 추임새가 흥겨움을 더하는 것이 유쾌했다. 판소리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관객이 있었기에 완벽한 공연의 3요소가 갖춰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랬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꼭 필요한 토끼의 간을 가져오려 뭍으로 나간 별주부의 모험담과 토끼가 우여곡절 끝에 수궁을 벗어나서도 계속되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꾀를 내어 상황을 극복하는 순간들이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약 3시간에 달하는 완창판소리가 이어지는 내내 흥미로운 대목이 참 많았다. 용왕의 약을 짓는 약성가, 토끼를 잡고자 뭍으로 가려는 아들을 말리는 별주부 모친의 이야기, 호생원이 된 호랑이와 별주부의 기상천외한 만남, 토끼와 별주부의 대립, 토끼를 잡아들일 때 고조되던 긴장감, 수궁에서 이루어진 토끼와 용왕의 밀당 등등. 


지금까지 내가 알던 수궁가와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지만 그래서 더 귀기울여 감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모든 대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설집을 보는데 빠져 소리를 놓치긴 싫어 눈은 무대 위의 두 사람에게, 귀는 북의 울림과 소리꾼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공연의 마지막이 다가와 매우 놀라웠다.






김성녀 예술감독이 사슴 같은 남자라고 소개한 소리꾼 김준수는 강진 출생으로, 전남무형문화재 29-4호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다. 완창판소리에 앞서 떨리는 마음을 털어놓을 땐 영락없는 20대 청년이었는데, 소리와 함께 달라지는 모습이 역시나 소리꾼다운 면모를 경험하게 했다. 



그의 소리는 구성지면서도 애달팠고, 때때로 속도감을 올려 긴장을 자아냈으며, 웃음과 볼거리를 선사하는 몸짓에 더해진 센스 넘치는 표현이 수궁가 미산제의 묘미를 가중시켰다. 등장하는 동물들과 관련된 대목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등에 방패를 진 별주부의 이미지가 특히 인상깊었다. 약을 먹지 못해 쇠약해진 용왕 연기도 만족스러웠고 목소리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도 돋보였다. 그리고, 수줍게 외치던 멍구똥도......ㅋ_ㅋ






1부에서는 사슴을 연상시키는 갈색 두루마기를, 2부에서는 화사한 보라색 두루마기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부채를 움켜쥔 손으로는 역동적인 손놀림을 전했고 손수건을 꼭 쥐고 있던 손으로는 수시로 땀방울을 닦아내며, 목이 탈 땐 물을 마심으로써 갈증을 해소한 뒤에 다음 대목을 막힘없이 이어나갔다.


이와 함께 1부는 박병준 고수와 호흡하며 풋풋함과 긴장감을, 2부는 이태백 고수의 리드로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페이스로 완창판소리를 맛깔나게 소화해냈다. 이태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고수와 눈을 맞춘 채로 미소짓던 귀여움도 최고였다. 북소리도 고수에 따라 차이가 느껴져서 이 또한 재밌었다. 







완창판소리가 끝나고 난 뒤에는 관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공연을 보러 온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스승 박금희(본명 박방금) 명창이 무대로 나와 따뜻한 인사를 건네니 눈물을 보였는데 나 또한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일말의 후련함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확신 등, 모든 감정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을 거라 생각된다. 붉어진 눈시울로 객석을 둘러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대했던 김준수의 완창판소리 데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의 소리를 원없이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전날 한숨도 못 잤다고 하던데, 이제 편히 꿀잠 자기를 바란다. 


토끼와 별주부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어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다음 행보 또한 기대하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소리꾼 김준수를 응원하겠습니다 :D







그리고 이건, 공연 보고 나와서 받은 용궁 토끼간빵! 완창판소리를 기념하며 준수한소리에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많이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는데 소심하게 2개만 챙겼다. 이런 빵이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완전 센스 만점이신 듯!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올해는 토끼간빵을 먹어서 건강하게 한해를 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리고 국립창극단의 공연 또한 예정되어 있으니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창극과 판소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직접 보고 들으면 훨씬 더 재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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