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톡톡 :: 강박을 가진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여기에
연극 <톡톡>이 삼연으로,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 다시 찾아왔다. 초재연을 관람한 상태였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뉴캐스트로 만나니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신선한 자극을 전해주고도 남았다.
각기 다른 강박 증세를 보유한 6명의 환자들이 강박증 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스텐 박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따뜻한 재미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며 몰입감을 더했다.
출장길에 나섰던 스텐 박사가 비행기 때문에 공항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여섯 사람은 게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그룹치료를 시도,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쓴다. 무대 위의 프레드, 블랑슈, 마리, 벵상, 밥, 릴리가 보여주는 강박증을 객석에서 바라보면서 깨달았던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그들만이 가진 어려움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박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버림에 따라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끼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강박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삶 자체가 어쩌면, 강박을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으로 점철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필수는 아니지만 꼭 해야만 하는 선택이라고 강요받게 되는 것들에 대한 의무를 짊어진 인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므로.
공연 속 그들도, 공연 밖의 우리도, 모두 같은 인간이기에 겪는 강박이 있다. 눈에 드러나고 안 드러나고는 중요하지 않다. 강박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그리하여 웃음을 통해 전해져 오는 것이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마냥 어둡게 표현하지 않고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만드는 작품의 묘미와 의외의 반전도 마찬가지였다. 무대에 올라올 때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의상과 미묘한 차이점을 접하게 돕는 스토리 전개도 꽤 괜찮았다.
밥과 릴리는 연극 <톡톡>을 볼 때마다 언제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을 하면 닮는다더니, 릴리처럼 똑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던 밥이 급기야 그녀의 앞머리 가르마를 대칭으로 만들 땐 웃음이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사랑스러운 커플이 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밥 : 유제윤
등장하는 순간부터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로 귀를 기울이게 했던 제윤 밥. 연극 <톡톡>을 통해 코믹한 캐릭터도 매우 잘 소화해내는 배우임을 알려줬는데, 화가 났을 때 앙칼진 눈빛으로 매섭게 째려보던 표정이 특히나 잊혀지지 않는다. 밥은, 표정 부자였다.
릴리와 짤막하게마나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도 좋았다. 이번에 바뀐 건지, 제윤 밥만 이렇게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깐동안이라도 노래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돼 만족스러웠다. 초록 가디건이 초록 셔츠가 된 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잘 어울렸으니 넘어가기로.
릴리 : 노수산나
노수산나 배우의 릴리는 귀여웠고, 동어반복증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일화는 언제 들어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로 인하여 작은 새의 메아리 같은 말의 울림이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다른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고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며 당당해지는 모습 역시도 멋졌다.
벵상 : 한우열
우열 벵상은 티셔츠마저도 캐릭터와 혼연일체를 이뤘던 인물이었다. 택시운전사이자 계산벽을 가진 벵상이 착용한 자동차 티셔츠라니! 티셔츠에는 총 다섯 대의 자동차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그의 계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리 꼬기를 시도하나 매번 실패하는 디테일도 재밌었다. 어차피, 건강에도 좋은 습관은 아니니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만 컸던, 필요할 때마다 감춰 둔 따뜻함을 꺼내 쓸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리 : 송영숙
영숙 마리의 끝도 없는 확인강박증은 상상 이상의 꼼꼼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도 가장 익숙하게 마주하는 것이 가능한 증상이라서 이로 인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신을 향한 기도도 좋지만, 벵상의 말처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 또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블랑슈 : 김유진
유진 블랑슈는 은근하게 여린 면이 도드라지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센 척을 하고 있는 것이 티가 난다고나 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질병공포증후군으로 인한 불안감이 겹쳐짐에 따라 겪는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6명 중에서 올 화이트 컬러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캐릭터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비주얼이 완성된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프레드 : 오용
오용 배우의 프레드는 연기가 참 찰졌다. 작품 속 반전의 키를 거머쥔 인물이기도 해서 주의깊게 바라보게 됐고, 여러모로 참 대단한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덧붙여, 오늘의 조교로 목소리를 들려준 권동호 배우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새로운 조교를 만나보게 돼 기뻤다. 목소리 최고!
배우들이 한 명씩 나와 무대인사를 하는 순간은 조명이 밝지 않아서 밝기를 조절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긴 하지만, 안 보이는 건 아니니까 기념으로 올려본다.
이날 음악이 잠깐 잘못 나오는 상황이 발생해 음향사고에 대한 사과의 말을 듣게 됐다. 그런데 무대가 아닌 객석 뒷편에서 관객들이 퇴장하려던 찰나에 이야기를 해버려서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잘 안 들렸다. 이 점은 보완을 해주었으면 한다.
릴리 사진 잘 나왔다! 릴리 사진 잘 나왔다! 예쁘게 땋은 머리카락 휘날리던 릴리는 말을 할 때 뿐만이 아니라 움직일 때마저도 환상의 멜로디를 전했다.
사진, 마음에 든다.
프리뷰 기간에 관람했지만 본공연 못지 않은 시간이었어서 흡족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여섯 명 사이에서 친근함이 담뿍 묻어나와서 그걸 보는 게 즐거웠다. 단순히 연기만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이와 함께, 연극 <톡톡>이 제시한 강박증의 해법 또한 의미심장했기에 곱씹어 볼만 하다고 여겨진다. 커튼콜 포즈도 유쾌했다. 오랜만의 1열에서 담아보는 커튼콜 촬영이라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냈.다.
무대 위 테이블에 자리잡은 블랑슈의 필수품도 한컷 담아봤다. 잊을 수 없는 그녀의 흔적. 청결을 중요시하던 블랑슈가 무대 곳곳에 분사하던 미스트(?) 덕택에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연을 봤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늦었지만, 블랑슈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게임을 하다 망설이며 주저하는 릴리에게 밥이 힘을 주기 위해 건네는 말이 이렇게 들렸다. 인생은 게임 같은 것이니, 모험을 즐겨도 괜찮다고. 그들의 강박증 역시도 삶이라는 게임에 주어진 모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을 거다. 당신도, 나도. 우리의 생애 자체가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톡톡>은 강박을 지닌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그려냈다고 봐도 되겠다. 많이 웃고, 감동하다 보면 다가오게 되는 작품의 메시지가 그래서 더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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