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상속, 할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손녀의 특별한 보물찾기가 돋보이는 성장소설
무더운 7월의 여름날이 다가왔다. 올해는 유독 날씨가 덥고 습해서 야외활동을 즐기기보단 시원한 실내에서 책 한 권을 골라 읽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많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오늘의 도서는 김선영 장편소설 <무례한 상속>으로, 따뜻한 감동과 잔잔한 여운이 읽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연서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무럭무럭 자라나며 열일곱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시작된 뜻밖의 여정이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이어짐에 따라 읽는 내내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의 비서 겸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기주 언니가 돌변하여 유산을 찾아 헤매던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것도 잠시, 연서는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기 위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려 애쓴다. 이로 인하여 할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손녀의 특별한 보물찾기가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일단은 할머니가 집안 곳곳에 남겨둔 편지 속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 급선무였다. 밀린 월급과 퇴직금이 간절한 기주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는 집에서 연서는 할머니의 유산을 획득하고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순빈이의 도움을 받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긴다. 순빈은 할머니 친구의 손자 겸 동급생으로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줌에 따라 유언장을 맡은 변호사 김문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서 눈길이 절로 갔다.
연서의 할머니는 염소 한 마리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었다. 염소 덕택에 염소우유를 넣은 빵을 개발해 부를 손에 쥐게 되었으나 마냥 순탄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었으므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서 또한 유산을 쉽게 쓸 수 없도록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점이 충분히 납득이 갔다. 그런 의미에서 돈이 손녀를 망치지 않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다정한 배려가 돋보였다.
오직 할머니와 연서, 두 사람만 아는 사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소설 <무례한 상속>을 통하여 찬란하게 빛났다. 할머니는 본인이 원하던 우아한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 뿐이었지만, 손녀에게는 한 마디 말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혼자 남은 연서에게는 무례한 이별의 날이 닥쳐 온 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책의 제목이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찰나도 상당했다.
그래서 더욱 연서가 할머니의 유산을 발견해 나가는 순간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남달랐다. 특히 과거의 애틋한 기억을 회상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17세를 살아가고 있는 주연서의 현재에도 주목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는 점이 감명깊었다. 김문 변호사와 할머니의 인연, 순빈과 할머니의 친분과 더불어 연서를 둘러싼 학교 생활 속 친구 관계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맞닥뜨리게 해줘서 안심이 됐다. 앙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연서와 기주가 오해를 풀고 두텁게 쌓아나가던 돈독한 우정도 보기 좋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깨닫게 된 결론은 이렇다. 연서가 충분히 사랑받았음을 일깨워주며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 할머니가 손녀에게 상속하고 싶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아니었나 싶다. 그 와중에 학교 성적을 올려야만 다음 편지를 읽을 수 있다는 할머니의 선언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안타까웠다. 김문 변호사와 합의하에 재량껏 수정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릴 뻔 했다.
적당한 위트와 소소한 즐거움이 담뿍 묻어나던 김선영의 <무례한 상속>은 따뜻한 성장 소설로 심금을 울리며 몰입감을 더했던 한 권이었다. 이 책에 앞서 작가가 집필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재밌게 읽었기에 망설임 없이 고른 청소년 소설의 묘미가 마음에 쏙 와닿아서 흡족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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