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수리공, 인공 사후세계가 선사하는 참혹함을 담아낸 SF 소설
경민선 장편소설 <연옥의 수리공>은 인공 사후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참혹한 시대의 이야기가 놀라움을 전하는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가상현실을 뛰어넘어 몸을 잠재운 채 의식으로만 체험이 가능한 대체현실 기술이 상용화된 사회에서 금단의 영역에 도전하며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고자 애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맞닥뜨리게 해준 사건의 진상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죽은 인간의 몸을 대신하여 자아 인식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기계 장치에 연결시켜 모든 감각과 기억 데이터를 공급하는 기술의 개발로 말미암아 인공 사후세계인 뉴랜드가 탄생한 세계 최초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가상의 사후세계에 갈 비용을 마련하려 살아 있는 동안 과잉 노동에 시달리며 막대한 비용의 의료 보험료를 감당하는 삶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특히, 돈이 넉넉하지 않은 자들은 죽은 이의 남은 보험료까지 떠맡아 의무 납부 기간인 30년을 채워야 뉴랜드가 입주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고단함이 전해져 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대체현실 세계에 접속하여 오류가 난 곳을 고쳐주는 수리 기사로 일하는 지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을 포함하여 엄마, 그리고 뉴랜드로 먼저 떠난 여자친구 희진의 몫을 부담하는 부양유령의 인생을 살아가며 추가적으로 돈을 벌고자 불법적인 일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밤에는 대체현실 세계로 들어가 의뢰 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체커로 종횡무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석은 또다른 의뢰를 통하여 뉴랜드에 접속했다가 그곳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희진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사후세계 시스템에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체커인 배창준, 손지우와 함께 뉴랜드에 침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진실이 눈 앞에 드러나며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죽음 그 이후의 날들을 위하여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뒤로 한 채 돈의 노예와 다름없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내젓게 됐던 작품이 바로 소설 <연옥의 수리공>이었다. 시대가 흐를수록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삶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도서의 묘미가 인상깊게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덧붙여, 소설 <연옥의 수리공>은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장편 우수상 수상작에 선정됨과 동시에 출간 전부터 영상화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이 부분도 기대가 됐다. 현실과 대체현실 기술이 어우러진 SF 소설의 강점이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바탕으로 영상을 통해 구현된다면 한층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 <콜>을 제작한 이충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더욱 궁금해졌다.
책에 담긴 문장들만으로도 적당한 박진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낯선 용어들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보유한 저마다의 능력을 단번에 이해하기란 아무래도 쉽지 않았으므로, 영화를 통하여 확인하게 될 서사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고도 남았다.
이와 함께 "삶은 구토를 참는 과정일 뿐이다. 울렁대는 속을 부여잡고 버티다가 변기 앞에서 한바탕 쏟아내면 그걸로 목숨은 끝난다. 비위가 약한 자부터 이승에서 사라지는 법이다."라는 문장이 책에 담긴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표출함으써 묘하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한때가 존재했음을 밝힌다.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삶의 마지막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인공 사후세계를 통하여 영생을 누리는 게 가능하더라도, 완전한 소멸을 바라는 이들을 위한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SF 소설로 흥미로움을 선사했던 <연옥의 수리공> 덕택에 다시금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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