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진과 유진 :: 상처 입은 아이들의 쓰라린 성장통

이금이 장편소설 <유진과 유진>은 2004년에 출간된 이후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 오고 있는 청소년 문학의 스테디 셀러로 명성이 자자한데, 2020년에 개정판이 발매되고 난 뒤로도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 책을 직접 만나게 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예전부터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드디어 지키게 돼 다행스러웠다.

 

 

책의 줄거리는 이유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같은 반에서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름과 성이 모두 같아서 키 차이가 나는대로 큰유진과 작은유진으로 불리며 학교 생활을 해나가게 된 이들의 인연은 사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꽤 오래 되었다. 왜냐하면, 예전에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시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큰유진은 지난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반면, 작은유진은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라서 혼란스러움을 경험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큰유진이 알은 체를 하며 성추행 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작은유진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와중에 유치원 원장이 둘에게 저질렀던 악행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며 두 사람을 포함한 가족들을 여전히 옭아매고 있음을 확인해야만 해서 안타까웠다.

 

큰유진은 가족들의 살뜰한 관심 속에서 아픔을 공유하고 또 함께 극복해 나가며 자랐기에 활발한 성격을 지닌 것이 눈에 띄었다. 이와 달리, 작은유진은 잃어버린 기억을 애써 상기시키려 하지 않는 엄격한 부모 아래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조용히 성장해 오다 숨겨져 있던 진실을 비로소 마주하며 방황하던 한때가 애틋함을 더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을 대하는 부모에게 분노한 작은유진의 일탈이 이루어지는 동안 큰유진은 남자친구 건우와의 이별로 뜻밖의 충격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유치원 때 벌어진 일을 계기로 둘의 관계를 정리하게 만든 장본인이 과거 두 유진이들을 돕기 위해 상담 전문가로 나섰던 건우 엄마였음이 밝혀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유진이들이 답답함을 해소하려 한 마음 한 뜻으로 의기투합하여 기차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작은유진에게는 큰유진이, 큰유진에게는 절친 소라가 곁에 존재함으로써 세 사람의 기상천외한 여행이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순간도 기억에 남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난생 처음 부모 없이 떠난 세 친구가 선사하는 요절복통 우왕좌왕 기차 여행 속에서 결국에는 가족과 조우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해해 나가는 시간을 접하게 돼 마음이 놓였다.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피해자가 된 아이들의 심리와 더불어 자식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각기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심정까지 만나볼 수 있어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많았다.

 

잘못한 건 가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 내야 하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권위를 앞세워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유치원 원장의 만행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읽는 내내 심금을 울렸던 소설 <유진과 유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과거를 품고 살아가게 된 아이들의 쓰라린 성장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주변의 시선까지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큰유진과 작은유진에게 나 역시도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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