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모든 소설] 안락 :: 원하는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하여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 속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그 와중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으므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 만큼은, 스스로 선택이 가능한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볼 때가 없지 않다. 문득 그런 소망을 꽤 오래도록 곱씹어 보던 찰나에 은모든의 소설 <안락>을 만났다.
10년 뒤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리하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는데 집중하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로 발매됨에 따라 분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담긴 메시지를 확인하게 해줘서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음미해 나가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소설 <안락>의 줄거리는 이렇다.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시대를 눈 앞에서 마주하게 된 지혜는 할머니가 선언한 수명계획으로 말미암아 복잡한 심정을 감추기가 힘들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것을 계기로, 5년 안에 모든 걸 정리하고 개운하게 가겠단 말을 할머니는 기어코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금씩 천천히 신변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한 할머니는 담담해 보였으나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마냥 편치 않았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는 여전히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할머니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이별을 준비하게 됐는데, 그로 인해 맞닥뜨리게 된 시간들 또한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덧붙여 국민투표로 안락사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본인이 정한 수명계획에 따라 소중한 사람들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마친 후 눈 감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가족들과 차례대로 대화를 나눈 뒤, 직접 담근 자두주를 나눠 마시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던 할머니의 최후 역시도 감명깊은 여운을 더했다. 앞으로도 계속 생을 이어나갈 사람들을 향해 건네는 쌉쌀한 위로와 죽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한 사람을 위한 달콤한 한 잔의 건배가 뜻깊게 다가왔다. 지금껏 만나 본 작가의 작품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해 왔던 술이 이번에도 역시나 색다른 매개체로 등장하며 잔잔한 울림을 선사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현존하는 웰다잉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법안을 착안해 내 소재로 활용함에 따라 작가만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써내려간 소설 속 내용이 진지한 고민을 더하게 만들어줘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원하는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도움으로써 현재를 있는 힘껏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을 극대화시키고야 말았으니, 이 역시도 작품의 순기능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삶을 영위하는 동안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 은모든 소설 <안락>과 함께 하게 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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