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런웨이, 안심결혼보험에 얽힌 사랑과 증오의 실타래

윤고은의 글은 읽을 때마다 매번 기상천외함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예상을 뛰어넘는 재치와 반전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도 새삼 깨닫게 돼 만족스러웠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서른여섯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도서관 런웨이> 또한 이로 인하여 혀를 내두르며 순식간에 읽어나가는 일이 가능했음을 밝힌다. 

 

책들 사이에 자리잡은 도서관 내부 통로를 유유히 런웨이하듯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안나는 자신의 흔적을 담은 도서관 런웨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생성해 운영하기 시작한다. 도서관 런웨이 마니아답게 안나는 여행지의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뒤로 하고 신혼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이에 따른 여파가 직장의 대규모 인원 감축으로 이어지며 10년 가까이 일했던 여행사마저 떠나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로 도서관 방문에 제약이 생기면서 안나의 도서관 런웨이 인스타그램도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인 AS안심결혼보험약관집이 담긴 게시물을 올리며 생존신고를 대신한다. 더불어 이 책이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 대화를 유리와 나눈 뒤, 급작스레 종적을 감춘다. 이로써 유리는 북클럽 지인이라고 밝힌 미정에게서 안나와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때 룸메이트였던 친구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안나로부터 출발하여 유리에게로 자연스레 바톤이 터치되며 발생한 시점의 변화가 맞닥뜨리게 해준 이야기의 전말이 기발하기 그지 없었다. 친구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필요한 단서 그 이상의 의미를 보유한 약관집을 손에 넣은 유리가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안나의 남편 정우의 행방을 파악함은 물론이고 과거 AS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조와 함께 하는 동안 깨닫게 된 진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안심결혼보험을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사랑과 증오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보다 많은 희생이 필요해 보여서 안타까웠다.

 

여기에 더해 사건의 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던 안심결혼보험 약관집 내용의 디테일함이 눈길을 잡아끌고도 남았다.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침서'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책에 담긴 설명이 매우 상세해서 감탄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683페이지와 15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약관집 한 권을 작가의 필력으로 전부 써내려가는 일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해하기 쉽도록 캐릭터를 설정하여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며 사례 중심으로 안심결혼보험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어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덧붙여 유리가 보험사 직원으로 일한다는 점도 개연성을 극대화시켰다. 약관집을 필두로 친구를 찾고자 추리력을 총동원해야야 하는 탐정의 직업으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을 통하여 룸메이트 시절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로 그동안 데면데면했던 유리와 안나의 속사정, 애틋했던 안나와 정우의 사랑, 유리와 조가 선보인 뜻밖의 인연, 수면 위로 떠오른 안나와 조의 관계가 매우 촘촘한 연결고리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인물들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 이 또한 뜻깊었다.

 

덕분에 안심결혼보험이라는 단어 아래 감춰져 있던 사랑과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새로이 마주하는 일이 가능해 소설의 면면을 곱씹어 보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까 언젠가는 정말로, 소설 <도서관 런웨이>에 쓰여진 문장처럼 보험이 결혼을 다루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 속에서 윤고은이 안내한 또다른 상상의 세계는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접목된 장르 안에 풍자가 곁들여짐으로써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해서 쉴 새 없이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상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또다른 작품도 조만간 빠르게 만나보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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