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결국에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야기
강화길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은 고딕 호러 장르의 또다른 면모를 확인하게 해주는 스토리 전개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한 권의 책이었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만 치중하지 않고, 뜻밖의 감동을 일깨워주는 서사의 흐름을 통하여 맞닥뜨리게 되는 반전의 순간들이 놀라움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소설가인 나는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작품을 집필하던 중 원한으로 가득찬 목소리에 사로잡혀 쉽사리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써내려가고 있는 글 속의 니꼴라 유치원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인천에 위치한 대불호텔 빈터와 주변 광경을 연상시킨다는 진의 말을 듣고 눈으로 확인하고자 목적지로 향한다.
나는 그곳에서 녹색 재킷을 입은 여자를 발견하고, 진은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외할머니가 자주 하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유사성이 존재함을 털어놓는다. 그리하여 집으로 찾아가게 된 두 사람은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과거 1955년을 배경으로 펼쳐진 대불호텔의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청요릿집 중화루로 변모한 대불호텔 3층에서 숙식하며 프런트 직원으로 숙박업을 해나가던 스무 살 고연주는 녹색 재킷이 잘 어울리는 여자로, 미국에 가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중이었다. 이와 함께 고연주가 고용을 결정함에 따라 호텔에 머무르며 도움을 주게 된 일꾼 지영현, 중식당 중화루 직원 뢰이한, 호텔 손님으로 숙식을 제공받게 된 소설가 셜리 잭슨이 마주하게 해준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이어졌다.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은 그런 의미에서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셜리 잭슨을 중심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밤중이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요함을 선보이는 대불호텔의 위엄과 거기에 자리잡고 있는 악명높은 계단이 선사하는 공포 가득한 괴담의 실체가 예기치 못한 신비로움을 자아내고도 남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진실에 닿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말이 더해짐으로써 환상을 한꺼풀 벗겨낸 이야기 속 알맹이는 생각보다 작았고, 진상을 파악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와 다름 없어 그저 추측을 해보는 걸로만 그쳐야 했으니까. 이 와중에 진의 외할아버지이자 박지운의 남편 뢰이한이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말을 꺼낸 화자의 의중이 궁금해질 뿐이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시간 안에서 균열이 생겨나며 만나보게 된 결말은 안타까웠지만, 그 속에서 단지 비극적 운명이라는 단어만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접할 수 있어 이 부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에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악의와 원한에 복받친 목소리들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사랑의 의미가 뜻깊게 다가왔으므로. 한때 건물의 위용을 떨치다 스러져 간 대불호텔의 과거 뿐만 아니라 빈 터만 남은 현재의 대불호텔 앞에 선 나와 진이 나아가게 될 방향 또한 긍정의 울림을 전해줘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작가의 개성이 책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게다가 읽는 내내 소설의 주인공인 '나'와 현실의 강화길을 동일시하게 여기는 경우가 상당해서 재밌었다. 여기에 더해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고딕 호러에 담긴 진정성과 반전도 몰입감을 극대화시켰다. <화이트 호스>에 비하여 공포가 덜한 반면, 의외의 따뜻함이 곳곳에 감돌아서 안심이 됐다. 쉽게 읽히면서도 쉽게 읽히지 않는 이야기라서 페이지를 넘기는 일 자체가 수월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기억될 듯 하다. 소설에 담겨 있던 마음에 남는 문장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작해 버리고 만다.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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