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 있어요, 사서가 건넨 책과 부록이 선사하는 따뜻한 기적의 힘
책 한 권이 선사하는 따뜻한 치유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날 때가 적지 않은데, 그것이 바로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선택한 아오야마 미치코 장편소설 <도서실에 있어요> 또한 마음에 쏙 드는 힐링을 전해주며 책 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들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책은 연작소설의 형식으로 구성됨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5가지의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이유로 힘든 상황에 놓인 다섯 사람이 도서실에서 만난 사서를 통하여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됨으로써 펼쳐지는 희망의 이야기가 눈부셨다.
대형마트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 도모카, 꿈과 현실 속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아 고뇌하는 가구 제조업체 경리 료, 임신과 출산 후 변화된 커리어로 말미암아 갈증을 느끼는 전직 잡지 편집자 나쓰미,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직업으로 삼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백수로 생활 중인 히로야, 정년퇴직 후 찾아온 여유로운 날들이 마냥 낯설기만 한 마사오의 인생이 공감을 자아내며 소설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다섯 편의 얘기 모두 훈훈한 감동을 전했는데, 그중에서도 작품의 출발점과 다름 없었던 첫번째 에피소드가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낙원을 뜻하는 에덴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형마트의 옷가게에서 계산대 업무와 손님 응대를 간신히 해나가며 의욕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도모카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 준비를 하고자 집 근처 커뮤니티 센터의 도서실을 방문해 사서 고마치 사유리와 만나며 맞닥뜨리게 된 일상의 전환점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취업을 위해 별 생각없이 지원한 곳에 합격 통지를 받아 입사한 이후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 건, 도서실의 사서인 고마치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엑셀과 관련된 컴퓨터 수업을 위한 책을 살펴보러 갔던 도모카는 고마치가 추천해 준 전문 도서 속에서 예기치 못한 그림책 한 권과 여기에 딸려오는 부록까지 건네 받으며 현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때 부록으로 도모카에게 전해진 것은 고마치가 양모 펠트로 완성시킨 귀여운 작품이었고, 책과의 연결고리가 남달라서 이로 인한 의미가 더욱 도드라졌다. 책과 부록을 통하여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인물의 각성이 눈여겨 볼만 했던 것이다.
고마치는 도서실을 찾아온 다섯 사람의 사연을 듣고 각기 다른 종류의 책과 부록을 선물하며 놀라운 시간을 경험하게 도왔다. 뿐만 아니라 책 속 문장만으로도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랑하는 고마치의 첫인상도 강렬한 여운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 속에서 고마치가 사서가 된 내력과 더불어 도서실의 견습 사서로 활약 중인 모리나가 노조미와의 관계 또한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노조미도 고마치 못지 않게 제 몫을 잘해내서 멋졌다. 특히, 탕수육의 파인애플에 비유하여 다른 이의 꿈을 응원하던 찰나가 기억에 남았다.
도모카 외에도 직장을 다니면서 간절히 원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료의 모습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부록을 받은 사람들 스스로가 의미를 찾아내서 원하는 걸 쟁취한 것임을 일깨워주던 고마치의 명료한 대답도 지혜롭기 그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삶의 질문을 예기치 못했던 곳에 존재하던 주인공의 선물로부터 실마리를 찾아 해답을 발견하게 된 이들의 앞날을 계속해서 응원해 본다. 다섯 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를 읽어 가는 동안 고마치와 노조미를 필두로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된 다섯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살다 보니 나에게도 고마치 씨의 부록이 필요한 날이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대신, 지친 일상에 위로를 전하는 책의 힘을 믿어보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도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손에 쥐는 일을 계속할 것임을 굳게 다짐한다. 오래간만에 다정한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을 접하게 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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