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트레이스 유(Trace U) :: 락 스피릿 가득한 클럽 드바이, 개장!

뮤지컬 <트레이스 유>가 무대로 돌아옴으로써 이우빈과 구본하가 머무는 락 클럽 드바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초연부터 꾸준히 관람해 온 극이 벌써 사연째를 맞이했다는 걸 알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던 것도 사실.


참고로, 지금 풀어놓는 얘기 안에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공연을 관람할 계획이 있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내용을 모르고 가는 것이 재미를 더하는 극이므로 안 읽는 게 나을 수도. 


2명의 배우와 5인조 밴드가 무대를 가득 채움으로써 진행되는 극은, 락 스릴러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작품으로 특유의 스토리 전개와 음악의 환상적인 호흡이 여전히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밴드 보컬 본하와 클럽 주인 우빈의 대화 속에서 관객들은 어느새 클럽 드바이를 찾아 온 클러버가 되어 환호성과 박수 갈채를 통해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신명나는 시간을 즐기는 게 가능한 점도 뮤지컬 <트레이스 유>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삼연과는 또 달라진 무대와 조명이 낯설긴 했지만 예전보다 친절해진 극으로 인해 작품을 이해하기는 훨씬 더 수월해졌다.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인 애드립과 치밀하게 짜여진 디테일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 속에서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락 스피릿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어 유쾌했다. 



[이우빈 : 김대현 / 구본하 : 최석진]


이날 만난 캐스트는 대현 우빈과 석진 본하 페어였다. 김대현 배우는 초연이 이루어진 아트원에서는 우빈을, 유니플렉스에서 막이 올랐던 재연에선 본하를 맡았었는데 삼연을 뛰어넘어 올해 사연은 우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특징이다. 나는 초연 때 다른 배우로 트유를 관람했고, 재연을 통해 대현 본하를 만난 것이 전부라서 그가 연기하는 우빈을 드디어 만나게 돼 색다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보컬의 역할을 잊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서 노래를 부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존재하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본하를 이끌었던 인물이 대현 우빈이었다. 공연 초반에 화사한 비주얼을 뽐내던 대현 우빈은 장르가 장르였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보다 많은 양의 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반팔 티셔츠에 걸쳐 입은 가디건이 매우 더워 보였다. 그래도, 의상 자체는 삼연보다 나아져서 다행스러웠다고 한다. 


석진 본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의 결정체 같은 캐릭터를 보여줬다. 무대에 설치된 스위치로 다가가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할 때마다 빛과 어둠이 반복해서 드러나던 전구의 의미는 극에 흐르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힌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석진 배우가 조연이 아닌 주연을 맡은 공연을 보는 게 트유가 처음이라서 어떨까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의 노래 실력과 연기로 자신만의 또라이력을 표출해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회색이 영어로 뭐냐면서, 이것을 응용한 개그를 들려줬는데 굉장히 허무했지만 웃음이 나서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의외로 이런 개그가 취향일지도.



드바이 안에서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우빈이 본하가 잊고 있던 기억의 진실을 알려줌으로써 맞닥뜨려야만 하는 사건의 전말이다.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헤쳐 나가는 둘의 해결책 또한 그에 못지 않으며 이로 인해 접하게 되는 엔딩 또한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품이 뮤지컬 <트레이스 유>의 묘미임을 볼 때마다 깨닫게 돼 짜릿하다. 이날도 그랬다.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는 트유가 트라이아웃을 걸쳐 초연할 때만 해도 파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흔하게 사용된 지 오래라서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록뮤지컬로 재해석해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를 매겨 본다면, 상황은 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 조금 지루해질만 하다 싶으면 넘버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점도 매력포인트.


댄석 페어의 이날 공연은 우빈의 이야기에 겨우 사태를 파악한 본하의 혼란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그대로 우빈이 시키는대로 본하가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트유맆 이후에 우빈 앞에 나타난 본하가 손목을 그어버리며 암전이 돼서 깜짝 놀랐다. 결국, 본하의 의지대로 완성된 결말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커튼콜에서 이어진 공연장의 열기도 대단했다. 석진 본하는 공연 내내 더웠는지 재킷을 벗자마자 생수를 본인의 머리에 콸콸 뿌리더니 미친 듯이 노래하며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안내했는데, 참아왔던 흥을 제대로 폭발시키는 모습이 최고였다. 앞으로의 공연을 더 기대하게 했던 석진 본하였다. 무릎 슬라이딩 자주 하던데, 괜찮을지 걱정이다. 트유는 이제 막 개막했을 뿐이니까. 


대현 우빈은 이번엔 본하 대신 관객들을 지휘하며 노래 가사를 알려주면서 해맑은 미소를 계속 보여줬는데 이때 또다시 심쿵했다. 노래가 끝나고 앵콜을 외치던 관객들에게 메롱을 하며 퇴장하던 모습도 얄밉지 않고 귀여웠다. 


금요일 밤엔 역시나 '미친 밤'이지! '미친 밤'으로부터 '나를 부숴봐'로 이어지는 넘버의 흐름은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으면서 뛰어놀기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덕분에 커튼콜에서 맘껏 소리 지르며 즐겼다. 


'아름다운 그녀'를 부를 때의 본하를 좋아하지만, 트유의 모든 넘버는 아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명곡이라서 한두 번은 잊지 않고 챙겨 보게 되는 듯 하다. 


공연에선 또라이 그 자체였는데, 커튼콜에서 가위바위보로 승패를 갈라야 하는 상황에서 둘 다 보자기만 연속해서 내더니 승부는 의미없다는 듯히 진하게 끌어 안아서 따뜻한 형제애가 느껴지는 게 반전이었다. 



이미 완벽한 대현 우빈과 쑥쑥 성장하고 있는 석진 본하의 페어 합이 점점 더 무르 익어가기를 응원한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입 없는 여자 얼굴 그림이 화려한 색채로 자리잡았다는 것. 알록달록한 아이섀도우와 짙은 풀메이크업의 그녀라서 아름다웠던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전에 만나왔던, 스케치에 가까운 그녀가 문득 그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락 스피릿 가득한 클럽 드바이가 개장했으니 클러버들은 공연장으로 모여주기를 바란다. 요즘 현매 할인에 뽑기 이벤트까지, 다양한 행사까지 마련되어 있어 나 역시도 시간이 되는 날 다시 또 방문해 신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굳게 다짐했다.  


클럽 드바이에 존재하는 두 또라이들의 또라이력을 조금 더 본받아 그렇게 세상을 살고 싶다. 멋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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