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의 사랑, 다정하고 흥미로운 SF 세계로 안내하는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소설집으로 만나 본 <어떤 물질의 사랑>은 책 속에 수록된 8개의 단편이 저마다의 개성을 통하여 다정하고도 흥미로운 SF 세계로 안내해 줌으로써 읽는 내내 놀라운 경험을 하는 일이 가능한 작품이었다. 특히, 여러 편의 이야기 속에 녹아든 수많은 감정의 파편이 곁으로 조용히 다가와 먹먹함을 자아낼 때가 없지 않아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 숨을 고르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해외출장이 잦았던 아버지로부터 사막체험을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며 물리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병든 어머니로 말미암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간절히 원했던 소망을 향하여 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10년의 세월이 흘러 항공훈련을 위하여 눈 앞에서 마주하게 된 사막의 풍경이 전해 들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시작된 첫번째 단편 '사막으로'는 작가의 자전적인 얘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문체 속 담담함이 심금을 울렸던 에피소드로 남았다. 

 

이와 함께 인공 자궁을 통하여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매우 짤막한 이야기가 색다른 상상력을 접하도록 도운 '너를 위해서',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멸망을 앞둔 지구의 바다를 살리기 위하여 얼음으로 이루어진 행성 엔셀라두스로 떠난 탐사대 대원 승혜가 미지의 생명체를 통하여 오래 전에 잃은 딸 기주를 떠올리며 선택의 순간에 다다르는 '레시', 배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라현이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을 하는 동안 변화하는 신체의 비밀을 통하여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돋보인 '어떤 물질의 사랑',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수술을 받고 간호사로 일하게 된 서이라가 우주로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 김도아를 만나며 벌어지는 '그림자놀이'도 인상깊게 다가왔다. 

 

여기에 더해 남자들이 좀비로 변한 세계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좀비떼를 피해 연락이 끊겨버린 동생 하나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던 지나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하나와 소통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순간이 도드라졌던 '두하나', 멸종된 줄 알았던 저어새가 비무장지대에 뚫린 오묘한 구멍에서 발견되자 조사를 위해 지원자를 모집하는 상황에서 현실이 버거웠던 은지가 참여하며 맞닥뜨린 결말이 눈에 쏙 들어온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 자동차 탑승 시 관계 예측 추돌 테스트를 위하여 제작된 안드로이드 더미와 델리가 마지막 측정 시험을 앞두고 연구원 한나와의 약속을 통하여 실현된 데이트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드라이브'까지 알차게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유쾌함 속에 스며든 일말의 상실,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 안에 자리잡은 실낱 같은 희망이 포착될 때마다 이거야말로 천선란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희로애락이 교차되는 삶을 대변하는 8가지 이야기의 묘미가 그래서 더욱 깊이 와닿을 때가 없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환경을 포함한 각양각색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잔잔한 여운을 선사하는 단편의 매력이 대단했다. 이로 인하여 보다 SF 소설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가 감탄을 자아냈음을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SF 소설에 입문하고픈 독자들에게 김초엽과 더불어 천선란의 작품을 권해 본다. 덧붙여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2020년에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의 소설 <천 개의 파랑> 역시도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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