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꿈을 이룬 할머니가 선보이는 위대한 모험의 여정
장편소설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은 도로시 길먼이 집필한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의 여운을 동시에 확인하게 해줘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겉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하얀 머리카락의 우아한 차림새가 돋보이는 중년 여성의 손에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과 더불어 탄환이 발사된 후 연기가 나는 것으로 보여지는 총 한 자루가 쥐어진 모습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폴리팩스 부인은 60대의 미망인으로, 남편과 사별 후 다 큰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원예클럽을 포함한 각종 모임과 봉사활동을 즐기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의사와의 진료 도중에 스파이가 되고팠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린 폴리팩스 부인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무작정 CIA 본부로 향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간절히 원했던 임무를 부여받기에 이른다.
지역구 의원이 써준 소개장을 갖고 만난 담당자 재스퍼 메이슨이 아닌 카스테어스로부터 캐스팅을 확정받은 폴리팩스 부인은 멕시코로 여행 온 미국인 관광객 행세를 하며 정해진 날짜에 특정 장소를 방문하여 물건을 받아오는 간단한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낯선 사람에게 납치되며 사건은 뜻밖의 길로 접어들고야 만다.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은 카스테어스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폴리팩스 부인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저 진심을 다하여 신에게 기도할 뿐이었다.
폴리팩스 부인에게 주어진 임무는 훈련받은 요원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쉽고 뻔한 일과 다름 없었다. 별다른 자질이 요구되는 게 아니었던 건 맞지만, 훈련은 커녕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터라 카스테어스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잠자코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감옥에 갇힌 것도 모자라 등을 맞댄 채 패럴이라는 정체 불명의 남자와 한데 묶인 상태에서 깨어난 폴리팩스 부인은 기지를 발휘함에 따라 기상천외한 탈출을 감행하며 놀라움을 전했다.
1960년대에 출간된 작품으로써 스파이를 활용한 첩보 작전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냉전시대가 작품의 배경으로 쓰여진 만큼, 심상치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눈 앞에서 벌어지며 호기심을 극대화시킨 소설이 바로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이었다. 그 안에서 폴리팩스 부인은 엄청난 난관을 마주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것을 철학으로 내세우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의 스파이 기본기를 톡톡히 다져나가는 모습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포근한 인상을 보유한 할머니가 선사하는 스토리 전개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내용상 스펙타클한 액션 특유의 짜릿함을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코지 미스터리 장르의 대모로 불리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소설의 백미를 접하는 게 가능해 매력적이었다. 페이지 곳곳에 스며든 유머러스함이 도드라짐으로써 가볍고 편안하게 읽어 나가는 일이 어렵지 않아서 읽는 내내 유쾌함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아마추어 스파이의 행보를 따라가는 동안 지금까지의 삶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던 노부인의 혜안도 돋보였다. 평범한 인생에 변화가 필요함을 감지한 폴리팩스 부인이 스스로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해 나아감으로써 경미한 우울증을 극복하며 인생의 활력을 찾아낸 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을 이룬 할머니가 선보이는 위대한 모험의 여정, 바로 그 시작을 알린 소설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잊고 있던 꿈과 감춰두었던 용기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폴리팩스 부인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니 다음 시리즈에도 계속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다. 첫 번째 작품에 이어지는 두 번째 소설의 제목은 <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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