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의 간식,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 즐기는 최후의 만찬
살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언젠가 찾아올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나의 뜻은 아니었으므로, 마지막 순간을 위한 여정 만큼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가와 이토의 신작 장편소설 <라이온의 간식>과의 만남은 우연한 순간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 준 것과 다름 없었다. 달콤한 시럽을 곁들인 팬케이크가 그려진 책표지는 작품의 타이틀과 더불어 군침을 꿀꺽 삼키도록 도왔지만, 맛깔난 디저트 한가운데 자리잡은 라이온의 집이 뜻하는 바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묵직한 메시지를 선사해서 이로 인하여 생각을 곱씹게 되는 때가 상당했다.
우미노 시즈쿠는 서른 셋의 나이에 담당의사로부터 앞으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선고받은 후, 모든 걸 정리한 채 라이온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빠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시즈쿠가 짧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한 공간은 폭신한 머랭의 비주얼을 떠올리게 만들어 레몬 섬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한 라이온의 집이다. 매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호스피스로 책 속 문장을 읽으며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전해져 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와 함께 라이온의 집에는 간식실이 존재하여 매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간식 시간이 열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서 눈여겨 볼만 했다. 이곳의 대표인 마돈나가 한 명의 주문 편지를 뽑아 다시 먹고 싶어하는 추억의 간식을 재현해 내는 순간이 선사하는 따뜻한 감동과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매력이 디테일한 묘사를 통하여 생생함을 불어넣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라이온의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선택한 간식은 물론이고 마돈나가 시즈쿠의 도착에 맞추어 준비한 크림색의 '소', 아침식사를 위해 내어주는 죽, 포도재배를 통해 탄생되는 와인의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맛깔나는 음식과 맑은 공기 아래 가득한 곳에서 시즈쿠를 포함해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도 뜻깊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시즈쿠가 강아지 롯카, 섬에서 생활하는 청년 다히치와 느긋한 한때를 즐기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아빠와 재회하며 마주할 수 있었던 다정한 찰나와 감춰두었던 진심이 마음을 울렸다. 시즈쿠가 선택한 간식이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밀크레이프였다는 점도 감명깊게 다가왔다.
여명을 앞두고 살아 온 나날들을 돌아보며 끝으로 향해 가는 시즈쿠의 모습이 많은 깨달음을 전해주었던 <라이온의 간식>이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라이온의 집과 같은 장소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눈을 감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삶의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 오롯이 나만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나는 것 또한 행운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라이온의 간식>을 읽기에 앞서 접했던 <달팽이 식당>, <따뜻함을 드세요>로 말미암아 확인할 수 있었던 작가만의 개성이 신작에서도 빛을 발해서 만족스러웠다. 음식이 건네는 위로 한 스푼의 묘미가 제대로 느껴졌다.
덧붙여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 즐기는 최후의 만찬으로 부담없이 섭취가 가능한 간식을 내세워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도서의 여운 또한 남달랐던 하루였음을 밝힌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음식소설의 강점이 두드러져 읽는 내내 작품에 푹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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