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시대를 초월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추리소설의 무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는 작가 데뷔 35주년 기념작품이자 97번째 단행본으로써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의 묘미를 확인하게 해줌에 따라 읽는 내내 몰입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각양각색의 추리물과 미스터리를 포함하여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의 필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저력이 다시금 빛나는 이야기를 만나보게 돼 흥미로웠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줄거리는 이렇다. 정의감이 투철한 국선 변호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변호사 시라이시 겐스케가 도쿄 해안 도로변에 주차된 차 안에서 흉기에 찔린 사체로 발견되는데, 경찰은 범인 체포를 위하여 탐문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구라키 다쓰로가 시라이시 겐스케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더불어 33년 전에 발생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금융업자 살해 사건의 진범 또한 자신이라고 밝히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고야 만다. 특히,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붙잡힌 용의자가 유치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였기에 구라키의 이야기는 더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소설 <백조와 박쥐>는 결백을 주장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용의자로 말미암아 종결됐던 1984년의 살인 사건과 구라키 다쓰오의 자백으로 해결을 앞둔 2017년 시라이스 겐스케 살인 사건을 동시에 조명하며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 감춰져 있던 진상을 파악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감명깊게 다가왔다.

 

특히, 사건을 깊이 파고들어 감춰진 속사정을 알아내기 위하여 애쓰는 주인공들로 가해자의 아들 구라키 가즈마와 피해자의 딸 시라이시 미레이를 앞세워 선보이는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형사 고다이의 지원과 날카로운 직감이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사건 당사자 가족의 절절함과는 결이 다르기에 두 사람의 행보가 눈여겨 볼만 했다.

 

구라키의 자백이 계속될수록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된 고다이, 가즈마, 미레이가 만나보게 해주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실체는 역시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선사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가즈마와 미레이의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책 제목의 의미 또한 책 속에서 제대로 만나볼 수 있어 뜻깊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소설 <백조와 박쥐>는 범인의 정체가 아닌, 등장하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인하여 인물들의 디테일한 내면을 만나보는 일이 가능해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섬세한 문체가 도드라지는 때가 없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공소시효 폐지로 인한 소급 적용의 문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향한 무분별한 신상털기가 일깨워준 SNS의 폐해 등 각종 사회문제를 접목시켜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곁들인 점도 탁월했다고 보여진다. 덕분에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마주하게 돼 만족스러웠다.

 

그 와중에 죄와 벌의 문제는 그 누구도 쉽사리 재단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던 내용도 남다른 무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덧붙여, 책 속에서 수사를 해 나가던 형사가 여자는 배우라며 속지 말자는 투로 읊조리던 부분이 사건의 진짜 내막이 밝혀짐에 따라 뜻밖의 아이러니를 남기며 예상치 못한 풍자와 해학을 선사해서 이 또한 기억에 남았다. 위기 상황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배우가 될 수 있다. 

 

낮과 밤, 빛과 그림자, 그리고 백조와 박쥐. 전혀 생각지 못한 순간에 만난 두 남녀의 안타까운 시간 속에서 풍기던 미묘한 분위기마저 잔잔한 여운을 전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였다. 시대를 초월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추리소설의 무게 속에 작가 특유의 재치와 촘촘한 스토리 라인이 돋보여서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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