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서늘함이 깃든 정유정표 스릴러를 읽다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을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새 서늘한 공포가 온 몸을 파고드는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리하여 작가만의 뚜렷한 개성이 제대로 녹아든 스토리 전개가 혀를 내두르게 하며 한숨을 깊이 내쉬도록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작품의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신유나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차례대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다 비극을 맞이하는 것. 그리하여 친아버지, 전남친, 전남편, 의붓아들을 사고로 위장해 제거한 뒤에도 악행을 멈출 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을 위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다 최후를 맞게 된 나르시트의 운명이 불온한 분위기를 뽐내며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신유나는 전남편 서준영과 이혼 후 딸 지유를 키우고 있다. 현재 남편은 차은호이며 하남에서 할머니와 거주 중인 아들 차노아는 천식을 앓는 상태다. 그리고, 언니 신재인은 오랫동안 신유나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 서준영의 실종 후 동생을 추적하며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진실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뒤틀린 자기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로 거리낌없는 살인을 행하며,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혼자만의 행복을 향하여 걸음을 내딛는 주인공의 모습이 놀라움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가스라이팅을 서슴치 않는 무자비함을 필두로, 미소 짓는 얼굴 뒤에 감춰둔 폭력성을 서서히 드러낼 때 맞닥뜨려야 했던 잔혹함 또한 충격적이었다.
신유나에게 있어 완전한 행복은 뺄셈이라고 했다.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것. 이를 위해서 계획대로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말이 유독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는 덧셈의 인생이란 은호의 말과 단순히 상반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껏 벌여 온 끔찍한 행적들과 오버랩됐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본인이 말한 행복의 의미와 일치했기에 공포를 느끼지 않기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조카 지유를 지키기 위하여 용기를 낸 재인의 모습이 감명깊었다. 덕분에 무시무시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와 다름 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유나의 가스라이팅에 끊임없이 시달려 온 사람들 중 하나로 안타까움을 마주하게 했던 시간을 지나자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고 희망의 빛 한 줄기를 건넴으로써 이제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존재로 탈바꿈했음을 깨닫게 해줘 마음이 놓였다.
이렇듯 어두운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행복>을 읽어가나는 동안, 작가의 또다른 스릴러인 <7년의 밤> 생각이 났다. 두 작품에서 전해져 오는 서늘함의 공기가 꽤나 비슷해서 끄덕이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7년의 밤>이 사이코패스를 중심으로 흡입력 넘치는 이야기를 선보여 속도감 넘치는 독서를 경험하게 해주었다면, <완전한 행복>은 나르시스트와 나르시스트가 실천에 옮긴 가스라이팅을 토대로 진행되는 서사에 포커스에 맞춰져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을 골라야 하는 순간이 상당했다.
작가만의 뚜렷한 개성이 제대로 녹아든 한 권의 소설을 만날 수 있어 뜻깊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을 져버리지 않는, 서늘함이 깃든 정유정표 스릴러다웠다.
덧붙여,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되던 찰나에 <완전한 행복>이라고 이름 붙여진 책의 제목이 반어법처럼 귓가를 맴돌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 자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닌데, 감히 완전한 행복을 정의내리는 일이 가능한 건가 싶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유나가 바라던 완전한 행복은 자기애에 사로잡인 나르시스트의 특권으로, 어긋난 자아도취가 탄생시킨 환상이자 착각이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사람마다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행복의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 "완전"이란 단어가 포함되는 순간, 위험해질 수 있음을 기억하기로 하자.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뜻하며 유의어로 '무결함', '안전', '완벽'이 뒤따르는 단어가 불러 일으킬 불행을 이미 눈 앞에서 만나보았으니, 무조건 주의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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