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 속에 담긴 자연과 삶에 대한 고찰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도전한 작가가 선보이는 요절복통 경험담 속에 자연과 삶에 대한 고찰이 녹아들어 흥미진진하게 읽는 것이 가능한 책이었다.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가득한 도서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빠져들 수 밖에 없었으므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뉴햄프셔 주로 이사한 뒤 본인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의 끝에서 숲으로 사라지는 길,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발견한 것이 여행기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이루어진 3,360km 여정의 출발점을 우연히 만나게 됨으로써 펼쳐지는 위대한 모험의 대서사시가 호시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단 본격적으로 종주에 나서기로 마음 먹은 후 다양한 정보 수집과 장비 구입에 성공한 작가는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고자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로 인하여 오랜 고향 친구인 스티븐 카츠와의 동행이 결정됐다. 재밌었던 건 어린 시절에 유럽여행을 같이 떠났다가 서로에게 감정만 상한 채로 돌아온 사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 뒤로 시간이 흘러 25년 동안 몇 번의 마주침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3,00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을 이동하며 많은 날들을 함께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에선 혼자보다 둘이 나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선택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동행과 발을 들인 애필래치아 트레일에서 작가는 산 곳곳으로부터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과 공포를 동시에 확인하며 전율했고, 이러한 이유로 벌목을 자연 경관에 대한 야만적 모욕이라 지칭하며 비판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숲을 걷는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의 즐거움을 깨달으며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하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즘같은 때에 맞닥뜨리게 기행문학의 묘미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 단순한 트레일 종주기가 아닌,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을 살피고 보호해야 함을 피력함과 동시에 인간이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할 현실의 무게를 일깨워주는 책이라 남다른 메시지를 선사하고도 남았다.

 

미지의 숲이 전하는 신비로움 속에서 위험에 따른 경각심을 높이는 일을 잊지 않으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누리게 해줘서 여러모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트레일 도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눈여겨 볼만 했고, 힘든 와중에도 몸이 건강해지고 있음을 실감하던 장면도 감명깊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고 산으로 여행을 떠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없지 않았다. 나 역시도 최근에 얕은 산 위주로 정상을 찍어가며 짧게나마 시간을 보내 본 결과, 예전에 몰랐던 새로운 등산의 매력을 새삼 알게 돼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무겁게 지고 온 배낭으로 인해 힘겨워하며 초반부터 비움의 미학을 실행에 옮긴 카츠와 그를 동행으로 반갑게 맞이한 빌 브라이슨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보다 더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밖에 없는 한때를 만끽했다는 점에서 두 친구의 시간이 뜻깊게 여겨졌다. 

 

다만, 애필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대한 얘기보다 미국국립공원과 관련된 설명이 책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조금 아쉬웠다. 술술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였던 만큼, 산에서의 풍부한 에피소드를 일부러 감춰둔 느낌이 들었던 순간도 없지 않았다. 

 

덧붙여, KBS 2TV를 통해 방영되었던 책 예능 프로그램 <북유럽>에서 김은희 작가가 추천한 도서로도 알려지게 됐다고 하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빌 브라이슨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나를 부르는 숲>으로 이제서야 첫 만남을 갖게 됐는데, 덕분에 다른 저서도 만나 볼 의향이 생겼다. 여기서 잠깐, 책표지의 곰은 산에서 대면했을 때 소름을 돋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존재의 상징으로 그려진 것이니 이 또한 염두해 두고 책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빌과 카츠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기는 실패에 그쳤지만, 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세계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던 시간이라 이야기를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는 과정이 의미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제목부터 묘한 끌림을 전했던 책이라 둘의 여행기가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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