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의 특권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는 부모면접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작품이었다.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행태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정부가 NC센터를 구축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시간을 담아내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여기서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아이들만의 방식대로 표현한 은어다. 그러니까 페인트 하러 간다는 말은 부모 면접을 보러 간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보면 되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모 면접의 시간 속에서 기대했던 모습에 꼭 들어맞는 이들의 만남이 성사된 이후, 각기 다른 색의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과정을 뜻하는 단어 또한 페인트임을 일깨워주는 문장을 만나볼 수 있어 뜻깊었다. 

 

물론, 색이 섞임으로 인하여 전보다 밝게 빛날 가능성과 더불어 기존에 가졌던 반짝임이 사라지고 탁한 어둠에 가까워져 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본인의 결정에 따른 대가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부모가 키우기를 거부한 아이들이 NC 센터에서 각종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는 동안, 자녀 입양을 원하는 예비 부모 면접에 참여하며 이로 인해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뒤엎는 현실 속에서 혈연이 아닌 전혀 다른 관계를 통해 맺어지는 가족의 형성 역시도 눈여겨 볼만 했음은 물론이다. 

 

다만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 제누301은 열세 살이 된 시점부터 4년 동안 페인트를 진행해 왔으나 마음이 가는 예비 부모를 찾지 못한 상태였고,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할 경우에는 센터를 홀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아 이 친구의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부모 면접을 성공적으로 치뤄 입양이 이루어질 경우, 부모들에게는 양육 수당 및 연금과 관련된 복지 혜택이 주어졌고 아이에게는 NC출신이라는 부정적인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결단을 내림으로써 NC출신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제누의 올곧음이 결국에는 놀라운 감동을 선사했다. 

 

 

철없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움을 갖추고 있던 제누, 따뜻한 면모를 지닌 아키, 파양으로 말미암에 센터로 돌아온 노아, 센터를 관리하며 아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가디 박과 최가 선보이는 색다른 이야기가 무게감을 심어주었던 소설 <페인트>였다. 

 

입양과 파양이 거듭되는 현실에 작가만의 상상력이 더해짐으로써 완성된 스토리 전개가 묵직한 메시지를 경험하게 도왔다. 이로 인하여 책임감 없는 부모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한 해결 방안이 시급해 보였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의 특권이 안타까운 비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청소년소설이지만, 어른들이 읽으며 곱씹어 볼만 한 내용이 많아서 이 또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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