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평온한 노년을 꿈꾸게 만드는 책
해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젊음의 특권이라 일컬어지는 청춘의 푸르름 대신, 건강하게 늙어가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시기에 만나게 된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평온한 노년을 꿈꾸게 만드는 책으로,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상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작가 본인의 일상과 생각을 중심으로 상황에 걸맞는 그림책의 줄거리와 감상평이 곁들여져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책의 부제가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였던 만큼, 다정한 이야기에 담긴 온기 가득한 감성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동심을 꺼내놓게 도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마주해 온 삶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해줘서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 삽질의 결과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됨으로써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좋아한 이야기 중의 하나인 ≪난 황금알을 낳을 거야≫를 예로 들며 생각지도 못했던 삽질의 결과가 탄생시킨 구덩이가 주인공과 더불어 구경꾼들에게도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변화를 일구어냈음을 일목요연한 문장으로 풀어냈는데, 궁금하면 무작정 해봄으로써 재미난 것들이 모여 재미난 인생이 된다는 가치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와 함께 분홍 벽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떠난 고양이 하스카프의 모험담이 담긴 ≪몬테로소의 분홍 벽≫도 놀라운 감동을 자아냈다. 그토록 원하던 분홍 벽을 발견한 뒤, 그 벽에 스며들며 완벽한 모험을 이루어낸 얘기가 선사한 충격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에 그림책을 좋아해서 자주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지금껏 접해 본 적 없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녹아든 환상적인 세계가 무한함을 다시금 깨닫게 돼 심장이 두근거렸다. 참고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속 그림책 목록은 도서 뒷부분에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으니 이 부분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조곤조곤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던 작가의 문장들에 한없이 이끌리게 되었던 책으로, 그림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인생의 묘미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게 해준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간절한 바람이 스며든 도서의 타이틀과 관련된 담담한 고백과 결심도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혼의 프리랜서로 집사의 역할을 겸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 매일 산책을 통해 규칙적인 외출을 감행하고, 일상을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낯선 일들을 할 기회를 잡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하여 관계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 밖으로 나갈 동기를 심어주는 이야기들을 자주 읽고, 주민모임으로부터 결성된 공동체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의 무례한 시선과 질문에도 혼자서 두 발로 씩씩하게 걷는 일이 먼저임을 피력하며, 자신의 신념대로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 또한 멋졌다. 이와 함께 작가가 소개한 여러 이야기 속에서 그림책의 존재가 그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실제로, 책의 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운 글자보다 그림 한 장의 감동이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을 적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손에 쥐면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메시지가 심금을 울리는 경우도 상당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세계 위에 내 세계를 겹쳐보는 일이다."라는 한 문장에 납득을 하자마자 뒤이어 쓰여진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 한다."는 얘기에 깊은 동의를 표하게 된 것 역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만의 매력을 더했다.
노년의 삶은 누구나 고독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조언이 쏟아져 내리는 현실에서 희망을 품은 채로 행복한 노년을 상상하는 모습이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했다. 덕분에 나 역시도 할머니가 되어가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가 숨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은 흐르고 결국은 늙어가는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이왕이면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노인이 되어가는 여정을 포근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림책을 곁에 두는 일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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