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를 향하여, 장르의 본질을 꿰뚫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추리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집필한 작품 중에서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0시를 향하여>를 최근에 읽었다. 이 책에는 작가가 탄생시킨 명탐정으로 명성이 자자한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등장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를 이어나감에 따라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가며 결말을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 흥미로웠다.
그리하여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추리력을 더하여 수사를 해나가는 배틀 총경이 맞닥뜨리게 해주는 사건의 해결 과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와 함께, 책의 제목이 선사하는 메시지가 남달라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의 여운이 상당했다.
사건은 걸즈 곶에 위치한 카밀라 트레실리안 노부인의 저택에 7명의 손님이 초대되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발생한다. 유명 테니스 선수이자 만능 스포츠맨으로 부와 명예를 겸비한 네빌은 눈부신 비주얼을 갖춘 아내 케이와 함께 하면서도 전부인 오드리를 잊지 못하던 중, 급기야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시기에 카밀라의 저택을 방문하여 만나는 일정을 계획해 실행에 옮기고야 만다. 여기에 케이를 마음에 둔 테드, 오드리를 오래도록 연모해 왔던 토머스, 트레실리안 노부인을 보살피며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메리,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고령의 변호사 트레브스 노인이 모이며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로 인해 트레브스와 카밀라가 연이어 죽음을 맞이한 뒤, 배틀 총경이 현장으로 달려와 단서를 추적하며 파헤친 살인사건의 전말과 범인이 공개돼 놀라움을 전했다. 그 속에서 <0시를 향하여>가 인상적이었던 건, 살인사건이 뒤늦게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먼저 제시하고 작가가 미리 깔아 둔 복선을 차례대로 회수해 나감으로써 완벽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확인하게 해준 이야기가 감명깊게 다가왔다. 사건 몇 개월 전에 이루어진 에피소드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하게 도왔던 깨달음이 연결고리로 작용할 줄은 미처 몰랐다는 점에서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배틀 총경이 사건을 해결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서 뜻깊었다.
투신 자살을 시도했던 앵거스 맥휘터의 기사회생, 배틀 총경의 딸 실비아가 내뱉었던 거짓 자백,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명민하게 파고들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트레브스의 숙명까지. 모든 것이 다 걸즈 곶에서 마주하게 된 사건과 얽히고 설켜 예상치 못한 결말로 나아가게 했다.
인간이 품은 원한과 복수를 향한 갈망이 불러 일으킨 비극의 참혹함을 <0시를 향하여>를 통해 확인하게 돼 안타까웠다. 반면에 증오로 점철된 교묘한 계획이 단순한 치정극을 뛰어넘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완성되며 이목을 집중시켰음을 밝힌다. 게다가 가독성이 좋아서 읽는 내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던 것도 장점이었다.
다만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의 전모까지 파악이 완료된 뒤, 마무리를 앞두고 갑자기 나타난 로맨스는 다소 뜬금없게 여겨졌다.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은 사랑의 의미를 상기시켜주는 것까진 좋았으나 두 사람의 감정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여졌던 절차로 이루어진 관계의 변화는 일부러 서두르는 듯한 감이 없지 않아 시간을 좀 두고 결정을 내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하나의 사건을 위해 마련한 소설 속 장치적 설정과 다채로운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만의 재치가 가득 담긴 책으로,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어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살인이 결말이자 0시라고 일깨우며 모든 것이 0시를 향해 모여드는 것임을 밝히던 배틀 총경의 말이 <0시를 향하여> 속 명문장으로 마음 속에 남았다. 살인에서 출발하는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작품으로 남다른 개성이 도드라져 이 또한 눈여겨 볼만 했다. 책의 제목부터 이야기의 엔딩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본질을 꿰뚫는 추리소설의 백미를 선사한 애거서 크리스티와의 만남이 반가웠던 하루였다.
'문화인의 하루 > 책 읽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고솜에게 반하면, 판타지와 미스터리가 접목된 흥미진진 성장소설 (0) | 2021.04.14 |
---|---|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나를 위한 투자는 소중해 (0) | 2021.04.05 |
습관을 만드는 뇌, 삶의 변화를 이끄는 흥미진진 뇌과학의 세계 (0) | 2021.03.22 |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멀고도 험한 내 집 마련의 길 (0) | 2021.03.15 |
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가 선사하는 판타지의 매력 속으로 (0) | 202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