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자연이 건넨 치유의 마법을 만나다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는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라는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25년 동안 다양한 증상의 우울증을 경험하며 살아 온 과정 속에서 자연이 건넨 치유의 마법을 통해 위로받았던 시간을 담아냄에 따라 희망의 빛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식물은 물론이고 광물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임과 동시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창작자로 다재다능함을 갖춘 저자가 선보이는 자연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함 그 자체라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코로나 블루가 불러 일으킨 시대의 현주소를 돌아봤을 때, 우리 모두가 우울증이 만연한 사회를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돼 더더욱 이 책과의 만남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10월부터 시작해 9월까지, 1년 열두 달의 기록을 오롯이 마주하는 것이 가능했던 <야생의 위로>는, 짧은 시간이라도 날마다 숲속을 산책하는 일이 에마 미첼에게 있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상담 치료와 그로 인해 처방받게 되는 의약품 못지 않은 치유 효과를 확인하게 해주었음을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집 밖으로 나가 자연의 풍경과 대면하면서 겪게 되는 경이로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책 속 문장을 통해 전해져 와 뜻깊었다.
작가는 자연에서 만난 신비로운 존재들을 그림과 글, 사진으로 담아내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로 인하여 야생에서 살아 숨쉬는 생물들의 남다른 개성이 페이지 곳곳에서 싱그러운 색채를 머금으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숲속에서 발견한 나무 열매와 새의 깃털은 물론이거니와 해변가에서 채집한 조개껍질, 화석들의 이름 및 관련 설명이 첨부된 페이지가 보다 쉬운 이해를 도와서 흥미롭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음울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추운 계절에 한없이 침잠하는 스스로의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괴로워하는 저자의 모습 또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적지 않아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라고 쓰여진 문장에 녹아든 간절함이 드러나서 더더욱.
에마 미첼은 우울증을 견디기 가장 힘든 시기로 12월부터 2월까지의 3개월을 손꼽으며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 집 밖에 나서기조차 힘든 때가 대부분이었다고 언급했는데,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다그쳐 반려견 애니와 산책하는 일과를 이어나가며 마음을 다독이려 애쓰던 부분이 눈에 띄어 감명깊었다. 마음을 파고드는 우울함에 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우울증과의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승패는 계속 엇갈렸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계절의 순리 속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단단함이 엿보여 응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통해서나마 영국에서 펼쳐지는 야생의 다채로운 변화를 만끽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덧붙여, 작가가 안고 살아 온 우울증의 기록과 병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자연으로의 여정이 교차되며 선사하는 이야기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어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찰나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자연에 담긴 치유의 마법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밖에서 낯선 야생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대신에 이름과 특성을 파악해 제대로 머리 속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언젠가 헤어나오기 힘든 우울이 찾아온다면, 나 역시도 <야생의 위로>를 집필한 에마 미첼과 같이 자연을 통해 위로받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과거에 푸르른 숲길을 걸을 때마다 온몸 가득히 차올랐던 힐링의 기운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으므로.
놀라운 야생의 세계로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해도 자연이 건네는 치유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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