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 변온인간의 사계절을 만나다
강민영의 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은 변온인간을 소재로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를 보여줌에 따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책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행사의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함으로써 별다른 친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엮이며 단단한 연대를 쌓아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인경은 경영직원팀 직원 희진과 베트남 출장에 동행하게 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직장동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더위를 많이 타는 희진은 베트남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인경이 땀을 아예 흘리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인경은 자신이 변온인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리며 희진의 도움을 받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보낸다.
더위에는 끄덕없지만 추위에는 한없이 약한 변온인간의 삶을 살게 된 인경은 가을 장마가 찾아오자 급격히 떨어지는 체온으로 말미암아 회사 업무는 물론이고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것마저 힘들어지는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희진이 곁에 있어 절망하지 않고, 동면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신체의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내일을 꿈꾸는 인경과 그런 인경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진심을 내보이던 희진의 모습이 감명깊었다. 특히, 인경과 희진이 돈독하게 우정을 쌓아나가며 관계의 변화를 선보이는 과정이 진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여태껏 회사에서 아웃사이더로 정평이 난 희진의 진면목은 변온인간이 되어가는 인경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명랑한 성격 안에 살아숨쉬던 날카로운 희진의 관찰력은 계절이 바뀌어 날씨가 추워질수록 괴로움을 겪는 인경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순간으로 드러나 감탄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처럼 희진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음을 털어놓던 인경의 올곧음도 눈여겨 볼만 했음은 물론이다.
베트남 출장이 맺어준 둘의 인연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대비하게 만든 기회이자 쉽게 말할 수 없는 진심을 나누도록 도와주는 계기로 자리잡았음을 확인하게 돼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자가 아니라서 가능했던 연대의 힘이 아름다웠다.
변온인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경험하게 해준 독특한 판타지의 묘미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이었다. 여행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직장생활과 동료들 사이의 관계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쓰여져 있었는데, 여기에 변온인간이라는 소재가 더해짐으로써 색다른 장르의 판타지가 탄생됐음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 재밌었다.
학창시절에 가졌던 겨울잠에 대한 로망을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책이라 이 또한 의미가 있었다. 덧붙여, 추운 겨울을 견디며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 읽는 즐거움이 남달랐던 소설이었음을 밝힌다. 경장편이라서 부담없이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괜찮았다.
인경과 희진,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봄의 시간이 한 줄기 빛으로 반짝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경이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고 싶은 것과 나의 소망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미소가 지어졌던 순간도 잊지 않을 거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은 한 문장을 여기에 남긴다.
"봄이 오면 떡볶이부터 먹을 거예요. 맥주 한 캔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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