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메트로폴 호텔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로스토프 백작의 찬란한 일대기

에이모 토울스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192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다.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선 안 되는, 이른바 종신 연금형을 선고 받은 서른 셋의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의 찬란한 일대기가 7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방대한 분량 안에 고스란히 담겨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1922년부터 195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32년의 시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오직 메트로폴 호텔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로스토프 백작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제한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흥미진진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재판을 통한 판결이 선고되기 전부터 4년 동안 머물렀던 메트로폴 호텔의 스위트룸을 뒤로 한 채, 낡은 다락방을 배정받아 거처를 옮긴 이후에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에피소드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는 존재로써 그렇지 않을 경우에 환경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점을 되뇌이며,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첫날부터 방법을 강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견뎌야 할 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백작의 성정이 돋보였기에 겉모습 뒤로 꽁꽁 감춰두었던 어두운 속내가 드러난 순간, 이로 인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절절히 묻어나 숨이 막혔다. 



로스토프 백작의 세계는 호텔 직원은 물론이고 그곳을 오간 사람들로 인해 예상을 뛰어넘는 확장을 이루었다. 꼬마 숙녀 니나와 호텔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보물찾기를 하듯 숨겨진 공간을 새롭게 마주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여배우 안나와의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 또한 선보였으며, 오랜 친구 미시카와 조우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눔에 따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니나의 딸 소피아를 키우며 아빠가 된 백작의 색다른 면모도 만나는 게 가능해서 의미가 있었다. 아이로 말미암아 변화를 꾀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의 절정도 긴장감으로 가득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 제목에 걸맞는, 모스크바의 신사다운 기품과 재치에 유머러스함마저 겸비한 로스토프 백작이 삶을 일구어나가는 자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상당했다. 여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이 더해져 교양이 넘치는 지식인의 여유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찰나 역시도 눈부셨다. 


험난함이 잠재된 격동의 시대였으므로, 소용돌이 안에 태풍의 눈을 품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모스크바의 신사>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가 긴장감 넘치는 재미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박학다식함에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통해 탄생된 백작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책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덧붙여, 백작을 포함한 인물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함을 선사해서 이에 따른 입체적인 면모도 매혹적으로 다가왔음을 밝힌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가 도래함으로 인하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진 덕분에 공간의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도왔던 것도 사실이다. 2020년 현재 우리의 현실과 과거 1922년부터 시작된 소설 속 백작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웠다. 각자가 나름의 사정을 지녔지만, 마음대로 원하는 공간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같았기에 잠시나마 아련함이 밀려왔다.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할 결심으로 뛰어든 백작의 선택이 마주하게 해준 결말의 짜릿함도 가끔씩 생각이 날 것 같다.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 시기적절했던 소설이 <모스크바의 신사>였음을 확신한다. 하루를 온전히 내줄 만한 가치가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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