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바웃타임 :: 개연성 부족, 남는 건 음악 뿐이었던 뮤지컬 판타지 로맨스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타임>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했으나 남는 건 음악 뿐인 뮤지컬 드라마로 한계를 드러내며 아쉬운 결말과 함께 16부작의 마무리를 짓고야 말았다. 이건 마치 뭐랄까, 스토리 전개의 엉성함을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겨우 채워낸 뮤지컬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나 할까?
수명시계라는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판타지는 마지막회에서 미카와 도하의 인연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깨닫게 해주며 둘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시사했는데,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얽히고 설키게 된 과정의 진부함이 이도 저도 아닌 로맨스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도미 커플에게 들이닥친 사고 이후 미카의 수명시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이와 함께 그것의 행방에 대한 개연성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 결정타였다. 단순히 사랑의 위대함을 진정한 가치로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마주했던 이야기의 설명을 대신하는 장면들 역시 그래서 더욱 황당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초반은 미카가 출연하게 된 뮤지컬 연습과 공연의 제작과정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며 귀를 사로잡는 넘버를 따라 음악적으로나 스토리적으로나 발랄한 흐름을 보여줬고, 후반부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함으로써 드라마적인 부분이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도하의 작은 형 윤도산(정문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 또한 확인하게 됐고, 오소녀(김해숙)의 가짜 장례식은 주인공이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존의 장례식과는 또다른 분위기와 메시지를 전하며 감동을 건넸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던 수명시계의 활용도는 극히 떨어졌으므로, 쉴드를 쳐주기가 힘들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각종 영화의 패러디와 차용 또한 눈에 많이 띄었는데 수명시계는 영화 '인 타임'의 설정을, 미카가 투입된 뮤지컬 '연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유명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가져왔기에 독창성 또한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제목마저 동명의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니까.
탄탄한 시나리오 위에 배우들의 열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작품이 흔치 않아 슬픔이 밀려왔다. 최종회에서 매듭만 잘 지었어도 좋은 드라마로 기억됐을 텐데, 기대는 기대로 남아야 했나 보다.
아쉬움이 훨씬 많지만 장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 덧붙여 이야기해 보자면, 미카는 자신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의 수명시계를 통해 남은 시간을 알게 되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 인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순간 자체가 기적임을 알려줬으니 때때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결말을 풀어나간 방식은 전혀 충분치 않았다. (단호)
드라마 <어바웃타임>은 나름의 판타지를 그려내며 현실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뮤지컬 '연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탄생 비화는 그중에서도 판타지에 가까웠다. 대극장으로 예정됐던 공연을 소극장으로 축소해 무대에 올린 것은 물론, 유명 여배우의 출연이 불발되자 연희의 언더로 준비해 온 미카가 여주인공 원캐스트를 맡아 흥행을 일구어내는 일은 현실에선 정말로 기적일 테니까.
음악감독 조재유(김동준)의 선구안과 탁월한 실력은 인정하지만, 뮤지컬 투자사와 제작사가 쉽게 허락을 해줄 가능성이 없는 캐스팅은 현실에선 공연이 올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므로. 좋은 공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짐에 따라 뒤따르는 부와 명예는 모두가 원하는 것. 단순히 공연의 퀄리티만 높아서는 안될 일이다. 유명 뮤지컬 배우는 당연하고 얼굴이 알려진 가수와 아이돌의 뮤지컬 출연이 빈번한 이유 또한 여기서 찾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바웃타임에서 만났던 뮤지컬의 기적이 대한민국 공연계에서도 나타나기를 소망해 본다. 실력 있는 배우는 언젠가 빛을 발하지만, 앙상블 배우로 또 언더로 최선을 다해왔던 이들이 주연 배우로 당당하게 서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연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통해 무대가 아닌 브라운관에서 새로이 마주할 수 있었던 뮤지컬 배우들의 선전도 기원한다. 오랜만에 색다르게 보게 되니 매우 반가웠다. 짧은 공연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된 무대지만 시계를 사이에 두고 연출한 것이 예뻤고, 조명과 함께 열연하는 배우들의 활약도 볼만 했다. 다만, 공연장 단차가 거의 없는 것 같아 그건 참 별로였다.
참고로, 판타지로 인해 잊고 있던 현실은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이 원캐스트 여주인공인데 하루라도 공연을 관람을 빼먹으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이리하여 이도하는 뮤지컬 '연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전관러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뮤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게 되는 전관러. 그 어려운 일을 이대표가 해냅니다!
"니 덕에 입덕해서 착실한 뮤지컬 덕후로 사느라
내가 요즘 공사가 다망하잖냐."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공연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오소녀 여사가 보여주는 진짜 현실을 만나게 된다. 미카로 인해 입덕의 길을 걸어 뮤지컬 덕후가 된 오여사. 그녀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하염없이, 노트북의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미카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덕후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하지만 덕후는 무해한 존재. 오직 자신이 집중하는 덕질에만 힘을 쏟으니 안심하셔도 된다는 말씀. 뮤덕은 물론이고 모든 덕후는 나이를 초월하니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오여사는 그냥 뮤덕과는 다르다. 뮤지컬 관계자, 그것도 무려 뮤지컬 배우가 지인이니 대단함!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잘 불러."
참고로, 오여사가 푹 빠져서 보고 있던 공연은 뮤지컬 스모크 영상! 현재 공연 중인 삼연도 아니고 재연!! 이 영상 나도 좀 갖고 싶고 그렇네. 영상에 등장한 뮤지컬 배우는 홍 역을 맡은 유주혜, 해 역을 맡은 윤소호. 두 배우 모두 캐릭터에 찰떡같이 잘 맞는 데다가 노래도 잘 부르니 맞는 말 하셨다, 오여사님.
뮤지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드라마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어바웃타임의 대본을 집필한 추혜미 작가와 최PD로 출연한 추정화 배우/작가/연출의 관계. 혈연으로 맺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이것은 그저 의심일 뿐. 하지만 추연출과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이름난 허수현 음악감독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이 은근히 지인의 분위기를 폴폴 풍겼다. 참고로 위의 두 사람은 부부다.
추연출과 허음감이 제작한 음악과 공연이 드라마에 다수 곁들여졌던 것 역시 이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켰는데 확인된 바는 없으니 슬쩍 넘어가기로 한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뮤덕의 호기심.
최미카엘라 역의 이성경과 이도하 역의 이상윤의 주인공 케미는 조화로웠다. 뮤지컬 배우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낸 이성경은 한층 더 성장했고, 진지함과 허당 사이를 오가는 동시에 예상 외의 개그까지 선보인 이상윤도 다음 작품에선 더 폭넓은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들며 해피엔딩의 정석을 보여줬다. 미카만을 위한 도하의 눈웃음이 특히 인상깊어서 마지막 사진으로 당첨!
뮤지컬을 좋아해서 보게 됐고 일단 그 부분 만큼은 흡족했지만 드라마로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어서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냥, 좋은 음악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생각해야겠지. 연희의 메인 솔로곡인 '난 나를'에서 "나는 날 축복해"라는 가사의 여운을 기억하고 또 명심하며 멈추고 싶은 매 순간을 살아봐야겠다. 그것이 진짜 나만의 어바웃타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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