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 정의의 무게 아래 펼쳐졌던 이야기의 묵직한 힘
드라마를 직접 본 사람들의 입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비밀의 숲>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이수연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더불어 똘똘 뭉친 명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기대 이상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정의의 무게 아래서 깊이있게 펼쳐졌던 흥미진진한 스릴러는 내부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추적극으로써의 기대감을 완벽히 충족시킨 드라마였다.
뿐만 아니라 묵직한 이야기의 힘 또한 보는 내내 마음을 울렸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작품의 제목인 <비밀의 숲>은 옛날 옛적에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의 비밀을 몰래 털어놓던 공간인 대나무숲을 연상시키면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며 시선을 끌었다. 그 누구도 비밀을 내뱉지 않고 꽁꽁 숨기면서 비리를 축적해 나가기 일쑤였고, 그것이 나무로 시작해 거대한 숲을 이루게 됨으로써 단 한명도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는 내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야 했다.
검찰 스폰서 박무성의 죽음은 TV를 수리하러 온 기사의 금품 갈취로 인한 단순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진섭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분위기는 전환점을 맞았다.
집요한 황시목의 수사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음으로 인해 단단히 결집된 뿌리까지 완벽하게 뽑아내 정의의 의미를 재확인시키면서 완벽한 결말을 맞게 도왔다.
주인공 황시목은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관련된 뇌의 영역인 뇌섬엽 제거로 인해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이성적 인물로 검찰 내부에 횡행한 부조리에 대한 진실을 알고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다. 이로 인해 또라이로 통하지만 검찰계 그 누구보다 투명하면서도 공정성 있는 수사를 맡기에는 적임자였음이 틀림 없다.
굉장히 외로운 인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경찰 쪽에서 든든한 조력자인 한여진 경위를 만나게 되면서 합동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진실은 언제나 긴장감 넘치는 순간 끝에 희열을 선사했다.
웃을 줄 모르던 그에게, 이성을 앞세워 달려나가기만 했던 황검사에게 있어 한경위는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였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한경위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소위 말하는 만화덕후 캐릭터까지 덧입고 있어 친근함이 더했다. 애정하는 만화 원작자의 말을 인용해 기본 인권에 대한 소신을 털어놓는 장면 역시 그래서 더 인상깊었다.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주인공이 사는 집에서 발견한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자마자 매우 반갑게 캐릭터 이름을 부르던 장면도 분위기 전환에 큰 도움이 됐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없었지만,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작품이었다. 끈끈한 동료애만으로도 충분했고,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적당한 경계에서 믿음을 주는 모습이 딱 좋았다.
황시목이 주시하고 있던 인물, 이창준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다. 권력에 힘입어 검사장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되기까지의 고속 승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의 내면에 깃든 야심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로맨스보다 더 활활 타오르는 열기를 자아냈던 황시목과 이창준의 대립.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예상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터져 나오게 했던 둘의 대결은 볼만 했다.
이창준은 황시목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를 특임 검사로 임명했고, 특임 수사팀을 결성하게 만들었다 해체를 선언하며 알게 모르게 그의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모든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지도의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파헤쳐서 밝혀낸다 한들, 그 또한 그 사람이 원했던 것이기에 완벽한 승리라고 봐야 할지도 조금은 애매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깊숙이 빠져들수록 마주하게 되는 썩어버린 검찰의 모습은 뿌리뽑아야 할 관행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며 혀를 차게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아직 정의감 넘치는 이들이 없지 않음을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황검사가 내뱉은 명언은 영화 대부의 명대사이기도 한데, 그는 이것을 실행에 옮기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어떤 이유로든 용납할 수 없는 악행은 저질러서도 안 된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를 위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방법이 잘못됐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수호자와 범죄자, 법복과 수인복 사이에서 어디에 설지는 오로지 자신만이 알겠지만 검찰과 경찰의 신분을 지녔다면 조금이라도 더 올바른 길을 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반전에 반전이 거듭됨으로써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준 드라마 <비밀의 숲>은 각자가 지닌 정의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고 여겨진다. 국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법 집행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헌법이므로 헌법이 있는 한 우리는 싸울 수 있다는 말이 묵짐함을 남겼고 실패를 인정하면서 괴물이 나오지 않게 하겠단 다짐 또한 진심으로 비춰져 계속 믿고 싶어졌다.
여진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연습을 하던 시목. 그는 결코 감정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삭히는 일이 많아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한없이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16부작만으로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던 장르물이자 새로운 한 획을 그은 명품 드라마였기에, 이 작품만의 여운을 즐기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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