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여름의 추억 :: 사랑을 통해 성장했던 한 여자의 일생

JTBC 단막극으로 만날 수 있었던 드라마 <한여름의 추억>은 사랑을 통해 성장했던 한 여자의 일생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었다


여전히 사랑하고 싶고사랑을 받고픈 서른일곱 라디오 작가 한여름의 현재는 그녀의 삶에 녹아든 네 남자를 통해 변화하며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던 학창시절의 첫사랑 현진,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개구진 추억과 더불어 잦은 다툼을 반복했던 시간이 떠오를 때마다 웃음을 전하는 지운,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욕심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해준, 직장 동료와 연인의 경계에서 썸을 타다 그냥 일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제훈. 네 남자와의 사랑은 추억이 되었으나 다음 사랑을 위한 버팀목이 되어줌으로써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했다.

 



혼자만의 아담한 공간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먹으며 TV를 바라보는 여름의 일상은 우리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밥 한 숟갈을 뜨다 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던 뒤통수의 외로움은, 사랑을 갈구하는 쓸쓸함으로 가득차 공허함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라디오 작가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일에 대한 주관 역시 뚜렷한 그녀지만, 때때로 다가오는 고독을 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햇빛 쨍쨍이는 한여름의 계절 안에 홀로 남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표현되던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두 눈을 온전히 뜬 채로는 바라보는 것이 힘들 만큼 반짝이던 체육대회 날의 하늘은 여름에게 찡그림을 선사했다. 어디서 굴러 다녔을지 모를 낡은 운동화를 신은 채로 달리기 준비를 하던 그녀를 향해 내리쬐던 계절의 눈부심은 너무나도 해맑아 오히려 마음에 먹구름을 몰려오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늘을 올려다 보던 시선을 멈추고 있는 힘껏 달려보기 위해 출발선 앞에 선 여름. 출발신호를 알리는 총소리가 울려퍼짐에 따라 경쟁자들을 제치고 쭉쭉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의 미소는 운동화가 발목을 잡아 넘어지기 전까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련한 음악 속에 승리를 눈 앞에 두었던 주인공에게 반전이 닥쳐왔음을 맞닥뜨렸을 때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어쩌면 앞으로 닥치게 될 이야기의 복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함이 돋보이는 장치의 효과는 드라마의 절정에서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결혼하지 않은 서른 일곱의 여자는 같은 처지에 놓인 선자리의 남자에게도,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가족에게도, 프로페셔널함으로 무장한 채 일해오던 직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저 평범한 삶을 영위해 온 한 사람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넘어 혼자 사는 여자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요즘은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곤 하나 오래도록 뿌리 내린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걸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상황 설정과 대사를 통해 드라마에 쏟아내며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연출이 탄생시킨 아름다운 영상미가 접목돼 잊지 못할 감성으로 다져진 작품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름이 지나 온 사랑의 기억들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만들어내며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준 점도 놀라움을 자아냈는데,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게 되니 그것이 오히려 진한 여운을 남기며 눈물을 안겨줘 묘했다.

 


시선을 잡아끄는 드라마의 영상 못지 않게 공개된 사진들 역시 매력적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으로 멋진 열연을 확인하게 해준 최강희의 공이 컸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를 넘어서는 오랜 내공이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삶의 연대기가 오롯이 펼쳐지면서,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명대사 또한 귀를 기울이도록 도왔다. 최강희였기에 가능한 한여름의 인생 드라마가 애틋함을 더했다.

 


작년 12월에 방영됐던 만큼, 추운 겨울에 경험하는 여름의 이야기가 무더운 날씨를 향한 그리움을 연상시켜서 이로 인한 재미도 없지 않았던 2부작과의 시간이었다. JTBC 드라마 페스타는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전에 방영된 드라마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어쩐지 익숙하다 여겨졌던 드라마 촬영지 중 한곳이 낙산성곽길이라고 하니, 여기도 따뜻한 날에 여유롭게 방문해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난 빛나고 아팠어. 모두 네 덕분이야."

 

손을 내밀면 햇살에 닿을 듯이 부서지는 여름의 반짝임이 잡힐 것 같았던 순간처럼, 어느새 찾아왔다 멀어져 가는 사랑의 시간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니, 부디 모두 잘 가기를. 고마웠으니, 고맙도록 행복하기를.


불같은 여자와 젊은 날 뜨겁게 사랑했던 김지운, 솔직한 여자와 잠시나마 편안함을 누렸던 오제훈, 첫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이제서야 그녀의 행동을 깨닫는 최현진, 사랑의 깊은 의미를 확인하며 닫혔던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 박해준. 한여름이라는 여자에 대한 잔상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 같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네 남자에게 주어진 <한여름의 추억>은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아닌, 그들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사랑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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