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터널 :: 3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슬립 추적극의 쫄깃한 긴장감

과거와 현재, 30년의 시간을 오가며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터널>은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이며 타임슬립 추적극의 묘미를 더했다. 


1986년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쫓던 중 터널에서의 혈투로 말미암아 2016년으로 홀로 넘어오게 된 박광호.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래는 그를 맞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전임 오기로 했던 88년생 박광호의 행방이 묘연해진 이유로 2016년 화양서 강력반에 어렵지 않게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년차 경사가 아닌 신출내기 취급을 받아야 했으나 그것을 제외한다면 손쉬운 취업과 더불어 집에 옷까지 생겨버린 행운의 사나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으니 남은 것은 범인을 잡아내는 일 뿐. 터널을 지나 자신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기 유일한 방법 또한 마찬가지!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혼자만 나이를 먹지 않은 관계로, 굉장히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지닌 박광호는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낡은 가치관이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대로 드러나서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여기에서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구하는 일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따뜻함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충분히 주인공다운 면모를 뽐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드라마 <터널>은 나름의 추리를 통해 범인은 물론이고 다음을 예측하게 만들어주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해소하게 도왔는데, 그로 인한 재미가 더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작정 어렵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촘촘한 관계의 연결고리에 집중해 탄탄한 서사를 구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 함께 한 전성식을 대신해 콤비로 합을 맞추게 된 김선재는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은 냉혈한의 모습을 지님으로써 인물의 속내를 궁금케 만들었다. 그의 삶이 베일을 벗게 됨으로써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치밀함이 또 한번 두드러져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까칠함으로 무장했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남자. 박광호가 현재로 오게 되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이는 김선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무시할 수 없고. 





여성연쇄살인범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통해 섬뜩함을 보여주었던 교수 신재이. 그녀가 경찰서 자문으로 광호, 선재와 사건을 맞닥뜨리며 경험하게 되는 진실 역시도 꽤나 충격적이었다. 속내를 알 수 없기로는 김선재 뺨치는, 아니 그보다 더한 캐릭터였다고 무방하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 역시도.


"평범하지 않으면, 살해 당해도 되나요?"

"죽어도 되는 여자들이 따로 있나 보죠?"


신재이의 질문은 단순히 여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신재이의 강의와 더불어 그것을 듣는 학생들을 통한 범인의 접근은 강력반 형사들과는 또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마주하게 돼 인상적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했고, 때때로 예상은 빗나갔으며,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실마리가 터져 나와 여러가지의 복합적인 감정을 보는 내내 마주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외였으면서 핵심을 찔렀던 한 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어둠이 아닌, 빛에 숨은 사람. 그렇다. 무조건 어둠에 숨어 있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범인은 가까이에 존재하기에 항상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비밀을 쉽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 적군은 물론, 아군에게도. 이것만은, 항상 기억해 둘 것.


 

터널을 통해 머나 먼 미래에 도달했으므로 이 공간을 활용해 다시금 돌아가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그가 살던 곳에 다다른 때가 있어 시청자들과의 밀당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과거로 인해 변화된 현재, 이것을 인지하면서도 기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찰나도 흥미로웠다.


선재 외에 30년의 지났음에도 꼭 닮은 얼굴과 성격이 웃음을 전해준 전성식 반장, 눈이 좋은 진하와 코의 감각이 탁월한 태희 콤비도 훈훈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린 박광호의 존재가 밝혀졌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착하게 살고 볼 일이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볼 일이라고 말이다. 





첫 만남부터 남달랐던 김선재와 박광호는 티격태격 말싸움에 주먹질까지 주고 받으며 결국에는 환상의 콤비로 거듭났다. 밥 먹었냐고 묻는 광호에게 안 먹었겠냐고 대꾸하는 선재를 보고 놀라는 성식의 표정도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달랐으나 범인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간절함으로 똘똘 뭉친 두 남자의 수사는 완벽했다. 


비포(before)가 아닌 애프터(aftrer)를 노리라는 조언도 귀에 들어왔고, 모두가 믿지 않았던 광호의 타임슬립을 놀랍게도 범인만은 단번에 이해하던 장면도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지능적이었다는 얘기가 맞겠지만.


끝까지 터널의 비밀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이 하나의 장치가 불러 온 어마어마한 파장이 사건의 시작부터 마무리를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해줘 마지막회를 떠나보내면서도 아쉽지 않고 시원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의문이 들었던 모든 내용에 정확한 답을 던져주고 결말을 냈기에 더더욱.



타임슬립과 관련된 추적 미스터리 스릴러가 꽤 등장했는데, <터널>도 이 장르에 있어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쇄살인사건을 쫓으면서 현재에 발생하는 또다른 사건까지 해결해야 했는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도 곱씹어 볼만 했다.


주인공으로 맛깔난 연기를 선보인 최진혁과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윤현민과 이유영을 포함, 드라마의 모든 배우들의 합이 쫀쫀해서 더 찰진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던 듯 하다. 더불어 작가의 다음 작품 또한 기대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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