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60대 여성 킬러의 삶이 느와르가 된 소설

구병모의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의 삶이 느와르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소설 속 새로운 등장인물의 출현은 파격적인 여성 서사를 경험하게 하며 책에 쓰여진 모든 문장들로의 깊은 몰입을 도왔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역이라 일컬어지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아 온 65세 조각의 현재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며 낱낱이 파헤쳐지는 시간 속에서 잔혹함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생의 단면이 펼쳐져 읽어 나갈수록 결말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손톱으로 불릴 만큼 날카롭고 빈틈없이, 냉혹한 방역업자의 길을 걸었던 조각은 60대에 이르러 노화의 과정을 맞닥뜨림에 따라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음을 느끼는데 이러한 불안함을 가슴 한 편에 쌓아둔 채로, 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에이전트에 소속된 젊은 방역업자 투우가 마주칠 때마다 조각의 심기를 건드리는 날들이 반복되고, 서로를 옭아맨 악연의 연결고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한편, 방역 작업을 하다 실수로 부상을 입은 조각은 에이전트 담당의사인 장박사를 찾다 의식을 잃는다. 그러나 조각을 치료한 건 강박사였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예기치 않은 운명에 휘말리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직업의 특성상 가족을 만들지 않고 살아 온 조각에게는 애완견 무용만이 유일한 피붙이와 다름없었다. 어릴 때 친척집에서 식모생활을 시작한 것으로부터 점철된 불행이 조각을 킬러로 성장시켰고, 류의 죽음 이후에는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버텨왔으나 이제는 그것조차 힘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무용을 받아들이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온몸에 퍼져 나갈 때쯤 마주쳐 버린 비극의 소용돌이는 평범하지 않은 직업에 걸맞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유려한 필체가 녹아든 소설 <파과>는 주인공의 남다른 직업과 기구한 삶의 여정을 가감없이 표현함으로써 색다른 느와르를 선보이며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스릴 넘치는 액션과 놀라운 작업의 결과물이 다소 잔혹한 장면들을 탄생시킬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눈을 잡아끌어서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소설의 제목인 <파과>가 '흠집이 난 과실', 그리고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으로 인하여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조각으로 하여금 명쾌하게 다가왔던 한 권의 책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복숭아와 관련된 묘사 또한 감명깊었음을 인정한다. 


덧붙여, 투우를 향한 조각의 마지막 한 마디 역시도 애절함을 더했다. 



그저 단순한 여성 서사가 아닌, 60대 킬러를 중심으로 놀라운 이야기의 흐름을 마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구병모의 <파과>는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매듭으로 완성되는 찰나를 목격할 수 있었으므로.


사는 동안 겪게 되는 아련한 그리움과 상실, 애틋한 사랑과 비정한 현실이 한데 어우러져 노년의 길목에 자리잡은 모습을 포착하게 해줬던 소설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함을 내포하고 있었던 <파과>였다. 또한 고단한 생의 기로에서 비롯된, 일탈을 닮은 어린 아이의 선택은 노인이 된 지금까지 조각의 최선일 수 밖에 없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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