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우는 섬, 기묘한 민담이 전해 내려오는 호죽도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다
송시우의 <대나무가 우는 섬>은 기묘한 민담이 전해져 내려오는 외딴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감에 따라 숨겨져 있던 진실을 비로소 마주하는 것이 가능했던, 놀라운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아 책 속에 푹 빠져들게 됐다.
대나무로 가득한 호죽도에 신축된 연수원의 사전 모니터원으로 발탁된 물리학과 대학생 임하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목적지로 향한다. 여기에 가수 나리, 역사소설가 최혁봉, 웹툰 작가 이윤동, 회사원이자 민담 수집 블로거인 진정란, 영화 제작사 프로듀서 신만수, 시사주간지 기자 공치수, 택시 운전사 조동욱까지 8명 모두가 연수원에 온 첫날을 기념하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낸 것도 잠시, 다음날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 힘겨운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에 명탐정의 역할을 자처한 것은 추리대회 수상경력이 존재하는 임하랑이었다. 기발한 추리력과 전공을 잘 살린 논리정연한 사고력으로 좌중을 압도해 나가며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여대생 명탐정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어 뜻깊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스산함을 자아내는 민담 '바늘 상자 속에 넣어 둔 눈알'로부터 비롯된 스토리는 실로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특히, 호죽도에서만 조금 다르게 전해지는 민담의 변형 속에 녹아든 잔혹한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경험해야 했던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밀실과 다를 바 없는 폐쇄된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고자 곳곳에 마련된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그중에서 연수원에 울려퍼지는 피리 소리에 담긴 암호를 풀어내던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살해 방법과 관련된 트릭을 물리적으로 증명해 나갈 땐, 어렵지만 대단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직업을 보유한 8명이 호죽도의 연수원에 모여야 했던 진짜 이유도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민담을 통해 체감하게 된 이야기의 힘이 다시금, 새롭게 뻗어나갈 차례가 왔음을 알게 해준 찰나였으므로.
민담을 활용한 소재와 물리학과 여대생 명탐정 임하랑의 활약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송시우의 <대나무가 우는 섬>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하랑의 탁월한 추리 본능을 다른 작품에서 또다시 만나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으니까.
작가의 첫 본격 미스터리에 재미를 느꼈던 만큼, 앞으로도 계속될 송시우의 미스터리 소설 발매를 기대해 보고 싶다. 한국의 장르문학계가 주목한 신인으로 데뷔 후 여러 편의 소설을 출시한 장본인으로, 실제로 읽어보니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상당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를 포함해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다양한 장르소설도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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