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담아줘, 덕질로 맺어진 세 친구의 깊고도 진한 우정 속에
박사랑의 첫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는 매우 사실적인 덕후 소설의 표본으로 공감대 형성은 물론이고 현실 덕후들의 심금을 울리기에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덕질로 맺어진 세 친구의 깊고도 진한 우정과 함께 만나볼 수 있었던 삶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수능을 마친 고3 겨울, 디디와 얭과 제나는 같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첫 만남을 가진 이후에 절친한 사이가 되어 30대인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가난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조금이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나이를 맞이함에 따라 열정 대신 자금력을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몰입감 높은 덕후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돌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최애는 달라질 지언정, 아이돌 덕후로의 마음가짐과 덕심은 오히려 업그레이드가 돼 재미를 선사하는 점이 눈여겨 볼만 했다. 게다가 현재 널리 사용 중인 덕후 용어와 티켓팅 관련 에피소드가 실감나게 쓰려짐에 따라 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속 주인공들과 파는 장르는 조금 달랐지만, 나의 덕질 라이프 역시도 그들과 비슷한 상황의 연속이었으므로 덕후로의 연대감이 오롯이 전해져 와 마음을 흔들었음은 물론이다. 더불어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덕후계의 명언을 책에서 문장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모르는 용어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충.격.
소설 <우주를 담아줘>는 아이돌 찐덕후인 디디를 중심으로 얭과 제나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세 사람의 인생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한때 정말 많이 좋아했던 일본 아이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아 다니던 회사에 휴가계를 낸 다음,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한 디디가 경험한 여행의 시간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결합돼 신비로운 분위기가 곳곳에 배어나 몽환적인 순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이 된 얭이 학생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선언한 둘만의 덕밍아웃도 인상적이었고, 제나는 글로벌한 아이돌 덕후의 좋은 예로써 성공한 덕후(성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점이 압권이었다. 덕질을 위해 일본어를 배우다 일본어 번역가가 된 것도 모자라 중국어 학원까지 새로 등록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다.
세 친구가 확인하게 해준 개성 넘치는 덕질 라이프도 흥미진진했지만, 덕친이 실친으로 자리매김해 평생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했다는 점이 훨씬 더 부러웠다. 현실에서 덕친 찾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서 그저 신분을 감춘 채 머글 행세를 하는 일이 덕후들에게는 일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주를 담아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가까웠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 책은 목차도 참 재밌었다.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한다'로부터 시작돼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에서 '오빠들은 나를 키운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덕질 라이프 뿐만 아니라 셋의 삶 속 변화까지 확인하게 해줘 의미있었다. 이와 함께 한 권의 덕후 소설을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동안, 작가의 덕질 라이프가 생생하게 머리 속에 그려져 이 또한 웃음짓게 만든 박사랑의 <우주를 담아줘>였다.
덧붙여 디디, 얭, 제나의 삶은 덕질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했고, 그 안에 셋의 우주가 담겨져 있음이 분명해 보였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이들의 우정과 덕후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여기에, 나의 우주가 고스란히 담긴 덕질 라이프 역시도 꾸준히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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