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 철가면의 비밀과 함께 마주한 삼총사 뒷이야기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는 철가면의 비밀 속에 담긴 비극적인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달타냥과 삼총사의 뒷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함에 따라 보는 내내 먹먹함이 밀려오는 공연이었다. 이 작품을 만나기 훨씬 전에 뮤지컬 <삼총사>를 관람했던 만큼, 과거 네 사람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이야기는 프랑스 왕실에서 태어난 쌍둥이 중 한 명은 왕이 되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철가면이 씌워진 채로 지하 감옥에 감금돼 살아가야 하는 게 법으로 정해진 1600년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왕위를 계승한 루이 14세는 탐욕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버려둔 채 향락에 빠져 사느라 바쁘고, 쌍둥이 형제 필립의 생사는 알 길이 없어진 지 오래라 암흑기로 지칭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편, 총사대로 왕을 보필했던 삼총사는 이제 은퇴해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토스는 아들 라울과 함께, 아라미스는 신부로, 포르토스는 아내 세실과 술집을 운영하면서 말이다. 오직 달타냥만이 루이 14세의 경호대장으로 왕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그 와중에 백성들을 생각지 않는 가혹한 정치가 계속되자 삼총사와 달타냥이 한자리에 모여 왕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달타냥은 세 사람과 의견 충돌을 불사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그로 인하여 펼쳐진 사건을 통해 맞닥뜨리게 된 놀라운 진실과 안타까운 결말은 넷이 함께 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게 만들며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다만, 극의 스토리 전개만 놓고 봤을 땐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반전이 기다렸던 관계로 다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풋풋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년들의 사랑과 우정이 녹아든 대서사시는 이제 추억으로 그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를 관람할 가치는 충분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속에 어우러진 중년의 달타냥과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의 케미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이들의 활약이 평화로운 파리를 이룩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크린을 활용한 LED 영상과 조명의 어우러짐은 물론이고 넘버의 웅장함도 귀를 사로잡았던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뮤지컬 <삼총사>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넘버 속 가사인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 비록 감춰져 있을 지라도"가 같은 멜로디의 다른 노랫말로 들려와서 심금을 울렸던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울컥해져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막이 내리기 전에 만나게 된 결말에서 또한 마찬가지였음은 물론이다.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는,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꼽고 싶다. 너무나도 뻔한 소비의 희생양이 된 크리스틴과 왕의 어머니지만 기도 외에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전부였던 앤, 당당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듯 했으나 결국엔 그저 포르토스의 선택을 응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세실까지 전부 그랬다. 


뮤지컬은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이것을 각색해 개봉된 영화의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면모를 추가하는 시도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참고로, 공연 중간에 총소리가 크게 공연장 전체에 울려퍼지는 장면이 있으니 이 점을 기억하고 티켓을 구입하기를 바라는 바다. 인터파크티켓 홈페이지 속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관련 정보에 공연연출을 위한 화약냄새 및 효과음으로 인하여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가 관람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예매 시 유의해 달라고 쓰여진 안내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게다가 이러한 내용을 인지하고 가도 놀랄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밝힌다. 



[CAST]

루이/필립 : 노태현

달타냥 : 이건명

아토스 : 서범석

아라미스 : 윤영석

포르토스 : 김법래

앤 : 정명은

라울 : 이준용

크리스틴 : 이영인

세실 : 이은율

마르끄 : 김효성

루이 13세 : 이강

앙상블 : 이은주, 이채욱, 정연호,

이승현, 김의환, 이한울, 이재혁,

김지유, 김지연, 김상혁, 양희웅,

김하은, 이성빈, 박지민, 조서영,

박상민, 이용욱, 조민건, 이지은,

방은주, 이경만


이날 만나게 된 배우들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자첫자막을 다짐하고 캐스팅을 맞춰 방문한 거긴 한데,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기에 만족스러움이 더 컸다. 단, 모든 출연진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루이, 달타냥,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만 드림 캐스트로 결정해서 봤다.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적으로는 그야말로 멋진 성장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달타냥과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청년 시절의 네 사람이 중년이 되어 나타난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배우들이 확인하게 해준 열연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넷의 과거를 이미 아는 상태에서 공연을 관람함으로 인해 따르는 재미도 상당했다. 덕분에 달타냥의 현재를 맞닥뜨리자마자 경악을 할 수 밖에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아토스와 포르토스는 수긍이 가는 세월을 맞이하게 해줘서 다행이었고, 아라미스는 의외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장본인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지난 날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신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그치만 정말 놀라운 결심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늠름함을 기본으로 검을 집어넣을 때 옷의 매무새를 정리하는 모습마저 절도가 넘쳤던 건명 달타냥, 여전한 검술 실력과 더불어 부드러운 포스를 갖춘 범석 아토스, 정의를 위해 앞장서는 면모와 작전을 구상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영석 아라미스, 유머와 귀여움과 매력적인 동굴 발성의 저음 보이스가 최고였던 법래 포르토스. 넷이 함께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이와 함께 루이14세와 필립의 1인 2역으로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무대에 선 노태현의 연기와 노래도 흡족함을 경험하게 했다. 로루이일 땐 타락의 절정을, 로필립일 땐 힘없는 청년의 불안감을 자유자재로 보여줘서 눈을 뗄 수 없게 도왔다. 뮤지컬 <메피스토> 이후에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1인 2역을 통하여 전혀 다른 개성을 만날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공연 중간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컨푸롱을 떠올리게 하는 넘버가 있었는데, 조명의 온도차에 따라 목소리와 표정은 달라짐이 도드라져서 시선이 절로 갔다. 


영인 크리스틴과 준용 라울은 노래는 나쁘지 않았지만 연기는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어서 점차 나아지기를 바라게 됐고, 애끓는 사랑의 절절함을 보여준 명은 앤과 사랑하는 이를 지지하는 은율 세실의 진심은 공연 안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동료애와 의리가 빛나던 효성 마르끄, 루이 13세 역과 루이 14세의 신하로 눈도장을 찍은 이강 배우, 여기에 앙상블 배우들의 화음과 가창력으로 다져진 떼창 역시도 감명깊게 남았다.


커튼콜에서 달타냥에게 달려가 품에 쏙 안기던 루이(필립)도 앙증맞았다.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고. 여기에 달타냥과 삼총사가 검을 맞대고 나서 마지막으로 루이(필립)의 차례가 되어 자신의 검을 겹쳤는데, 이때 법래 포르토스가 장난으로 갑자기 검을 든 손을 높이 들어올려서 로루이의 검을 쳐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검을 겹치던 로루이가 귀여웠다. 달타냥과 삼총사가 로루이의 검을 제대로 받아주는 모습도 굉장히 인자해 보여서 유쾌했다. 



공연의 타이틀은 아이언 마스크였지만 철가면보단 달타냥과 삼총사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 극이었던 만큼, 네 배우의 합이 잘 맞아 떨어져 최상의 관극을 만끽했던 하루였다. 액션씬도, 가창력도, 연기와 캐릭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모두. 삼총사에 이어 아이언 마스크에서도 달타냥에게 마음이 쓰였던 찰나이기도 했다.


자첫자막에 자체 레전드로 마무리를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 공연 관람은 2층 2열 중블에서 이루어졌는데,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전부 다 잘 보여서 이 또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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