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틸다 :: 부당한 현실에 정면돌파 할 줄 아는 소녀의 기적

오늘의 이야기는, 2018년 10월에 본 뮤지컬 <마틸다>에 관련된 조금 늦은 리뷰.


국내에 초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뮤지컬 <마틸다>를 드디어 관람했다. 금손 친구의 도움에 힘입어 국민카드 만원의 행복 이벤트로 공연 티켓을 득템, 무려 3층 1열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국카 만행은 수수료가 따로 붙지 않아서 진짜로, 단돈 만원만 지불하면 돼서 가격 면에서도 메리트가 상당했다. 


LG아트센터에서 만나는 것이 가능했던 뮤지컬 <마틸다>는 로알드 달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마틸다'를 원작으로 제작된 공연이다. 동화적인 감성과 판타지의 예술에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도서관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을 섭렵하며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재능 넘치는 소녀 마틸다(Matila)는 그런 자신을 괴상하게 바라보는 부모와 구더기라는 단어로 어린이들을 지칭하며 경멸하는 학교장 미스 트런치불에 대항함으로써 놀라운 기적을 선사한다.



마틸다를 이해하며 응원하는 담임 미스 허니와 학교 친구들이 하나가 되어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작전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TV를 보라고 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옳지 않아!"를 외치며 발걸음을 내딛는 어린 소녀의 당당함이 아름다웠다. 이와 함께, 마틸다가 도서관 사서 미세스 펠프스에게 들려주던 동화로 인해 펼쳐지는 반전 또한 흥미로웠다. 



이날의 캐스팅은 마틸다(이지나), 미스 트런치불(김우형), 미스 허니(박혜미), 미세스 웜우드(강웅곤), 미스터 웜우드(현순철), 앨리스(송두나), 라벤더(김하윤), 아만다(김연화), 브루스(김규동), 토미(유호열), 나이젤(성지환), 에릭(성주환), 호르텐시아(박소현), 그리고 앙상블 배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기존에 만나왔던 캐스팅 보드와 다르게 아기자기함을 갖추고 있어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아역 배우들은 크게 구더기 팀과 도롱뇽 팀으로 나누어졌고, 내가 본 날은 도롱뇽 팀이었다. 



신기하게도, 뮤지컬 <마틸다>는 공연 전과 인터미션을 포함해 커튼콜에서도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어 마음껏 셔터를 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마틸다가 부르는 'Naughty(너티)'는 공연을 보기에 앞서 미리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확실히 무대를 통해 다시 만나니 감동이 2배였다. 


구해주기만을 기다려 온 동화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으나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고전 속 남녀를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날림과 동시에 불공평하고 부당한 상황에선 참지 말고 쬐끄맣고 힘이 별로 없다고 할지라도 쬐끄만 용기를 내라고 말하던 마틸다. "포기하는 건 옳지 않아! 필요한 건 약간의 똘끼!"라며 자신만의 계획을 실행하던 모습에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하지만 공연 관람 중에 나를 사로잡았던 장면과 넘버는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2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When I grow up(어른이 되면)'의 가사와 그네를 타고 날아오르던 장면의 감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객석에서 터져 나오던 환호성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오히려 더 힘든 날들이 계속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더더욱, 어렸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네를 타는 친구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한때였다. 


그리고, 마틸다의 솔로 넘버인 'Quiet(침묵)'.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순간 속에 찿아온 침묵의 의미가 "침묵, 꼭 침묵은 아닌데 침묵/ 그저 포근한 느낌/ 고이 접어둔 오래된 담요처럼/ 두근거리는 맥박처럼"이라는 가사와 함께, 마틸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찰나는 깊은 감명을 선사했다. 



그러나 마냥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공평한 현실에 홀로 놓인 소녀가 구원을 찾아나가는 시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어른들의 뒤틀린 세계와 흐름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쯤, 또다른 사건이 발생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의 부당함이 허를 찌르는 작품이 뮤지컬 <마틸다>였음을 인정한다. 약간의 초능력과 기상천외한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과정이 장르적으로만 따져 보자면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기에, 어린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여겨도 될 듯 싶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가서 이로 인한 의외성이 좋으면서도 아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쯤 볼만한 공연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알파벳이 쓰여진 블럭으로 가득한 무대를 중심으로 놀라운 장면이 곳곳에서 드러나 볼거리가 쏠쏠했고, 확실히 3층에서 보게 되니 조명의 멋스러움이 한눈에 들어와 이 점도 최고였다. 엘아센 3층은 과학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그중에서도 1열은 특히나 완벽 그 자체였다. 



지나 마틸다는 똘망똘망한 눈매와 똑부러지는 말투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친구였다. 마틸다 캐릭터에 싱크로율이 잘 맞아 떨어져서 보는 내내 웃고 울었다. 그중에서도 지나 마틸다의 'Quiet'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다만, 뮤지컬 <마틸다> 안에서 허용된 커튼콜이 반쪽짜리와 다름 없었다는 점에서 원하는 장면을 담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무대인사에 앞서 노래 부를 때는 촬영이 금지돼서 이게 뭔가 싶었다. 설마 했는데, 이때 사진 찍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특히, 마틸다의 시그니처 포즈는 꼭 찍고 싶었으나 이 또한 커튼콜이 제한된 관계로 허탈함을 간직한 채 공연장을 나오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구성이 커튼콜에서 느껴져 유쾌했던 뮤짘절 <마틸다>였다. 아역 배우들과 성인 배우들, 오케스트라의 조합이 절묘했던 공연이었다. 



더불어 미스 트런치불 역을 맡은 김우형 배우의 새로운 면모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어 깜짝 놀랐다. 미스 트런치불의 말투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배우의 입에서 "~거여요!"가 끊임없이 터져 나와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미스 허니로 열연한 박혜미 배우는 처음 만났는데 연기도 노래도 만족스러웠고, 마틸다를 통하여 서로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미스터 웜우드와 미세스 웜우드의 캐릭터는 별로였지만, 현순철 배우와 강웅곤 배우가 찰지게 열연해줘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하윤 라벤더도 마틸다의 베스트 프렌드로 최선을 다했다. 



부당한 현실에 정면돌파를 시도할 줄 아는 승부사 마틸다의 이야기가 전해준 메시지는 참으로 다양했는데, 역시나 살아가는데 있어 똘끼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뇌리에 깊숙이 박히지 않을 수 없었다. 옳지 않은 일을 참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해볼만 한 거겠지. 아니,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


마틸다, 너는 기적이었어. 아니 어쩌면, 기적이라는 말로 부족할 만큼 대단한, 기적을 넘어선 아이.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계속 위풍당당한 소녀의 성장기를 기억하며, 뮤지컬 <마틸다>가 건넨 용기와 위로의 시간을 잊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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