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 :: 그랜드 피날레에 걸맞는 멋진 공연이었다!
디즈니가 제작한 뮤지컬 <아이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연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이 작품을 잘 보내주기 위해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을 찾았다. 친구와 함께 KB국민카드 1+1 행사로 관람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평소보다 공연장 로비가 훨씬 더 북적였다.
뮤지컬 <아이다> 관람은 전 시즌을 통틀어서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감명깊게 다가와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려한 무대 속 환상적인 조명과 역동적인 군무가 배우들의 열연과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피어난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을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공연이 뮤지컬 <아이다>였다.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와 누비아 공주 아이다가 선사하는 러브 스토리가 극의 중심에 존재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의 각성을 통한 성장, 포로로 끌려와 암네리스의 시녀로 일하면서도 메렙을 포함한 누비아 백성들의 간절함 속에서 본인의 신분을 자각함에 따라 확인할 수 있었던 아이다의 리더십 등이 관람 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암네리스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약혼자인 라다메스를 사랑함과 동시에 값비싼 물건들로 온 몸을 치장하는 걸 즐기는 철부지 공주로 자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어리석은 건 아니었다. 조세르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암네리스가 착용한 액세서리에 대한 진실을 내뱉자 당황하며 어두운 표정과 달라진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지금껏 아무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으므로 더더욱, 이러한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조금씩 왕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던 암네리스가 극 초반에 선보인 쾌활함을 뒤로 한 채, 품위있는 카리스마를 뽐내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왕을 설득시켜 자신의 권위로 아이다와 라다메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자비를 베풀던 순간은 뮤지컬 <아이다> 속 명장면 중의 하나로 남았다. 이로써 암네리스가 통찰력과 선견지명이 뛰어난 왕으로 이집트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CAST]
아이다 : 윤공주
라다메스 : 최재림
암네리스 : 정선아
조세르 : 박송권
메렙 : 유승엽
파라오 : 김선동
아모나스로 : 오세준
앙상블 : 강인영, 강동주, 계채영, 곽대성,
서재민, 이승일, 박래찬, 박종배, 김현지,
하유진, 지새롬, 심형준, 김아름, 박승일,
전성혜, 정민희, 전유리,
김예인, 이종원, 박선영
그리고, 흐트러짐 없는 칼군무와 완벽한 떼창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한 앙상블 배우들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갓상블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완벽한 모습이 객석의 끊임없는 환호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주조연에 버금가는 갓상블의 묘미 또한 뮤지컬 <아이다>의 강점임을 다시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송권 배우의 조세르도 매력적이었다. 비중은 적은 편이나 캐릭터가 확실해서 악역다운 면모가 소름을 돋게 하는 때가 많았다.
모든 배우들이 제 역할을 잘해주었지만, 이날 나를 매료시킨 주인공은 역시나 암네리스 역의 정선아 배우였다. 2019년 11월 뮤지컬 <아이다> 오연의 막이 오르기까지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의 진가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찰나를 맞닥뜨릴 수 있어 행복했다. 암네리스로 다시 와줘서 정말 기뻤다.
수트송으로 유명한 'My Strongest Suit'를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이로 인하여 심장이 벅차올랐다. 상상을 뛰어넘는 의상의 향연으로 채워진 패션쇼 못지 않게, 글리터로 립 메이크업의 포인트를 살린 암네리스의 반짝이는 입술이 3층 객석에서도 잘 보여서 화려함의 극치를 전했다. 게다가 이 넘버가 이루어지는 무대 또한 백미였음을 인정한다. 커다란 천을 설치해 푸른빛의 목욕탕을 만들고, 와이어를 장착한 배우들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수영하는 동작을 만나보게 해줘서 감탄했다. 수트송 외에도 상황에 따른 감정 변화가 배우의 대사톤과 움직임만으로 설명되는 점도 짜릿했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연기와 노래로 흡족함을 전해주는 선아 암네리스가 눈 앞에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이와 함께 암네리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역할도 눈부셨다.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권하는 이야기의 안내자로도 탁월함을 발휘했기에 공연의 첫 번째 넘버로 만나게 된 'Every Stroy Is A Love Story'와 마지막을 장식한 넘버 'Every Stroy Is A Love Story(Reprise)'가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끝을 선포하는 포스도 암네리스다웠다.
최재림 배우의 라다메스는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본인이 원치 않는 일에 직면했을 땐 아버지에게 맞설 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해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아이다의 말을 곱씹어 보다가 누비아 사람들에게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는, "전재산이야!"를 외치며 환하게 웃던 장면에선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Fortune Favors The Brave'를 통해 만나보게 된 시원한 가창력은 전율을 경험하도록 도왔고, 넘버 속 가사가 라다메스 자체를 지칭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기도 했다.
윤공주 배우의 아이다는 누비아 백성들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하면서도 라다메스에 대한 사랑 또한 놓을 수 없어 괴로워하며 비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들이 연기와 노래를 통해 표출돼 몰입감이 극대화되는 캐릭터를 자랑했다. 로브송으로 일컬어지는 넘버 'Dance of the robe'에서 로브를 걸침에 따라 단단해지던 눈빛이 좋았다. "충분해"에서의 고음이 조금 힘에 부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 점만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로브송이 절정에 치달을 때쯤, 이집트의 포로가 아닌 누비아 공주로의 위엄과 압도적인 눈빛이 포착돼 경이로웠음은 물론이다.
'The Gods Love Nubia'는 "신의 사랑 누비아"라는 가사와 이때 울려퍼지는 멜로디의 중독성이 엄청난 곡으로 1막의 마지막을 수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떼창을 뚫고 들려오던 지새롬 배우의 고음과 윤공주 배우의 목소리가 누비아인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줘서 눈물겨웠다.
공주 아이다와 재림 라다메스 조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 포로와 적국의 장군이라는 현재의 상황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한없이 서로에게 빠져든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사랑을 드러내는 넘버 'Elaborate Lives'는 얼레벌레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는데, 밀도가 꽤 진한 애정씬을 통하여 치명적인 장면을 자아내서 위기 속 러브 스토리의 애절함을 최고조 끌어 올리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급기야, 나중에 보여지는 얼레벌레 맆에서 급기야 울게 되고 말았다고 한다.
단순한 러브 스토리를 넘어서 왕의 역할에 대해 묻는 작품이자 전쟁의 참혹함을 확인시켜 준 극이라는 점에서 보는 내내 뮤지컬 <아이다>의 무게감이 남달랐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위대하며,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적인 새드 엔딩이 아니라 해피 엔딩에 가까웠다는 점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힘을 무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므로.
우리가 공연장을 찾은 날이 국카데이였던 만큼, 커튼콜 후에 배우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상품 증정을 위한 추첨의 시간을 가졌다. MC로 진행을 맡은 인물은 라다메스 역의 최재림 배우로, 잠깐 동안 주어진 대본의 내용을 감정없이 읽어 나가며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배우들은 KB국민카드를 강조하며 공연과 관련된 소감을 얘기한 뒤 추첨을 통해 싸인 프로그램북을 받게 될 관객 선정을 마쳤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뮤지컬 <아이다>의 무대가 어둠으로 둘러싸이며 진정한 막을 내렸다.
아이다 커튼콜도 굉장한데 3층 객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걸 체크해 보니까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마지막 사진은 이것으로 대체한다. 오츠카와 함께 날아 올라서 본 공연은 전체적으로 무대 가리는 것 없이 두루두루 보는 것이 가능해 나쁘지 않았다. 조명과 무대 활용이 매우 잘 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공연이 끝나고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그랜드 피날레에 걸맞는 공연을 만끽해서 후회는 없다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언제나 그렇다.
아직 공연 기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배우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뮤지컬 <아이다>를 잘 마무리했으면 한다. 관객 1은 여기서 그만 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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