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 절망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공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초연 관람 이후로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꾸준하게 만나러 가는 작품 중의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창작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공연이라고 봐도 무방한 여보셔는, 벌써 여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와 관객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상당했다. 


끊임없이 총성이 오고 가는 한국 전쟁 속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남북한 병사 6명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절망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만들기 충분했다.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선율과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에 동화를 연상시키는 판타지를 접목한 스토리의 조화가 훌륭한 데다가 매 시즌마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역량 또한 탁월해서 언제 보러 가도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공연이 바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였다. 



게다가 이번에 오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대사가 사라진 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여신님의 생김새에 대하여 서로 궁금해하던 와중에 조동현이 던지던 질문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돼 다행이었다. 


6명의 군인 각자가 지닌 사연이 무대 위에 펼쳐지던 순간들도 인상적이었다. 조명도 예뻤는데, '꽃나무 위에'가 들려오던 장면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던,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가지 그림자가 이날따라 더 와닿았다. 



[CAST]

여신 : 한보라

한영범 : 서경수

류순호 : 진호

신석구 : 강기헌

이창섭 : 차용학

조동현 : 조풍래

 변주화 : 진태화 


공연에서 만난 7명의 배우들이 기대 이상의 열연을 선보여서 다시금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던 하루였다. 여신님을 포함해 멀티 캐릭터로 활약한 한보라 배우는 시원한 가창력을 토대로 창섭의 어머니와 주화의 동생이 되어 무대에 등장했을 때가 특히나 감명깊었다. 주화의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거짓말, 이게 뭐야?"라며 깜짝 놀라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졌다.


경수 영범은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젊은 아빠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잔머리는 쓸 줄 알지만 뺀질거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올곧은 대위의 면모가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꽃나무 위에'를 통해 들려오던 진희의 목소리도 많이 어려서 앞서 언급한 캐릭터 설정에 대한 확신을 굳히게 만들어줬다. 덧붙여, 이 노래에서 맞닥뜨린 진희 역의 보라 배우 목소리도 앙증맞아 귀에 콕 박혔다. 


진호 순호는 경수 영범과 함께 서 있으니 작고 소중함이 한층 더 두드러져 귀여움이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룹 펜타곤 멤버로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로도 여러 번 무대에 섰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는데, 안정감 있는 연기와 노래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줘서 호기심이 생겼다.


영범과 순호가 같이 열창하는 듀엣곡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 "그녀만"을 올려 부르는 걸 듣게 돼 감탄했고, 둘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서 좋아하는 넘버가 더욱 더 완벽하게 귓가를 울려서 행복했다. 솔로곡 '악몽에게 빌어'의 고음도 무난히 잘 소화해냈으며, '꿈결에 실어'에서 여신님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가 움직이는 모습에도 시선이 절로 갔다. 여러모로, 자신이 맡은 배역과 싱크로율이 잘 맞아서 흡족함을 자아냈던 진호 순호였다.



기헌 석구는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그냥 신석구였다. 영범을 도와 창섭을 자신들의 계획에 끌어들일 때 마주할 수 있었던 순발력이 남달랐고, 사랑하는 누나에 대한 진심이 애틋하게 느껴져 '꽃봉오리'를 보고 듣는 내내 울컥함이 밀려왔다. 용학 창섭은 핸섬한 카리스마가 돋보였고, 냉혹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감춘 따뜻함이 은근히 표출될 때가 많아 뭉클했다. 물고기를 무서워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역 두 줄기만 겨우 건져냄으로써 확인하게 된 의외성도 재밌었다. 그리고 열매 제일 적게 따는 사람이 저녁밥 짓기로 했는데, 오늘 저녁밥은 니가 짓겠다면서 석구가 여신님에게 고백할 수 있도록 가장 나중에 다른 군인들을 따라 움직이던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풍래 동현 역시도 외강내유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라서 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했던 것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태화 주화 역시도 캐릭터를 잘 살린 연기와 노래로 멋진 시간을 선물했다. 몸을 워낙 잘 써서 춤출 때 눈이 번쩍 뜨였고, '원 투 쓰리' 넘버에선 귀까지 쫑긋 세워 집중하느라 바빴다. 여기에 더해 석구와 주화의 케미도 최고였다.


7명 개개인의 실력도 괜찮았지만, 여럿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귀에 들려오던 화음이 환상적이라 이로 인한 황홀함도 강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꽃봉오리'를 부를 때 전해져 오던 화음. 몽글몽글한 기분과 애절함이 동시에 다가오는 에피소드라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앉은 좌석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2층 6열 중앙 블럭이었고, BC카드 연말 특가전으로 만원의 행복 이벤트가 진행될 때 예매를 했기에 수수료 포함 11,000원의 가격으로 저렴하게 잘 볼 수 있어 좋았다. 유플 1관 2층이 단차는 나쁘지 않은데, 객석 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짐이 많으면 불편한 관계로 DSLR 카메라는 집에 두고 오츠카만 챙겨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래서 사진 퀄리티는 별로지만 기념으로 남기기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줌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당겨 찍었더니 화질이 좀 깨지긴 했으나 이 정도면 굿. 



여보셔 내용이야 많이 봐서 잘 아는 데다가 무대도 이전과 크게 바뀌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무대 전체를, 그야말로 여신님의 심정으로 멀리서 관람하며 배우들의 디테일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 즐거웠다. 한때 정말 많이 봤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내 기준 공연 최다 관람횟수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차지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신났다.


더불어 여보셔 오연까지는 전캐스트 관람에 큰 의의를 뒀는데 이번 육연부터는 그러지 않고, 매 시즌 한 번씩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기회가 된다면, 소극장 버전으로 다시 보고픈 마음이 간절한데 이건 그냥 희망사항. 



마지막으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실황 OST가 새롭게 발매된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이건 정말 기뻤다. 2019-2020 시즌 여보셔 배우들의 목소리가 담긴 OST를 하루 빨리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2019년의 관극을 마무리하는 공연으로, 애정하는 작품인 여보셔와 함께 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쁜 주말이었다. 2020년 새해가 왔으니 남은 공연부터 막공까지 모두 힘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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