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 파티에 초대받아 다녀 온 개츠비 맨션 속 스몰룸 탐방기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본격적인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써 관람 전부터 두려움 반, 설렘 반의 감정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극이었다.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마냥 지켜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레뱅뮤지엄 2층에 자리잡은 개츠비 맨션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된 손님으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객석과 무대가 따로 분리되지 않은 공간을 통하여 관객과 배우들이 함께 소통하며 이야기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로 인한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호불호 또한 완벽하게 갈릴 수 밖에 없었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를 무사히 만나고 돌아왔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써내려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성대한 파티를 주최해 즐기던 개츠비가 옛 연인인 데이지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욕망, 꿈에 대한 이야기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기본적인 중심 줄거리는 소설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지만, 관객들이 초점을 맞추는 캐릭터에 따라 인물의 서사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관람하면 도움이 된다. 덧붙여, 이 공연에서 만큼은 스토리 라인의 흐름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단 극중 인물이 되어 직접 참여하며 파티 분위기를 즐기는데 의의를 두는 것이 훨씬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니 이 또한 기억해 두기를 바란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가도 공연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알고 가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이야기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니, 소설이나 영화 중 하나를 골라 미리 보고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나는 영화를 보고 갔다. 



입장에 앞서, 그레뱅뮤지엄 1층에 마련된 매표소에서 티켓을 수령하고 나면 이곳에서 운영 중인 코트첵(Coat Check)을 통하여 외투를 포함한 가방과 짐 등을 맡길 수 있으니 최대한 가볍게 개츠비맨션에 입장하는 편이 유용하다. 물품보관소는 공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붐비기 마련이니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다. 


드레스 코드로 권장하는, 시대적 배경에 걸맞는 의상을 갖춰 입을수록 개츠비의 파티와 공연이 끝난 후에 주어지는 포토 타임의 재미가 더해지는 건 맞다. 그러나 굳이 구입을 고려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겨지는 바, 적당히 깔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집에 오피스룩, 결혼식 하객룩으로 지칭되는 행사룩이 한 벌쯤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실제로 1920년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드레스와 정장도 없지 않았으나 무난한 원피스와 더불어 슬랙스, 정장바지에 블라우스 및 니트를 걸친 세미정장 차림도 상당했으니 옷에 대한 고민은 접어둬도 괜찮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되긴 하지만 청바지에 후드티나 트레이닝복, 츄리닝 등의 너무 편한 차림은 자제하는 편을 권한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얘기해 보자면, 의상을 멋지게 차려입거나 눈에 띄는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갈 경우 배우들이 말을 많이 걸어줌과 동시에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면 무료음료 한 잔이 제공되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단, 신발만은 무조건 편하게 신고 공연장에 방문하기를 강력 추천한다. 운동화도 괜찮다. 의자의 개수가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줄곧 앉아서만 즐기기 불가능한 이머시브 공연의 특성에 따라 움직이기 편한 신발 착용은 필수다. 일단 파티장의 메인룸에 도착하자마자 서서 <위대한 개츠비>의 막이 오르길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발을 위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꼭 운동화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굽이 높지 않은 워커나 슬립온을 신어도 오케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탁월한 선택임을 깨닫게 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파티장으로 들어가기 전 맞닥뜨린 로비의 밀랍인형들은 밀랍인형 테마파크 그레뱅 뮤지엄의 정체성을 드러낸 반면, 닥터 TJ 에클버그 광고판은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가 진행 중임을 알려줘서 재밌었다. 



티켓을 받아 짐을 맡기고 화장실까지 갔다온 후, 사진 속 개츠비 드럭 스토어로 들어가 잠시 대기했다. 이때 머틀, 조지, 루실이 다가와 말을 걸며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로 인하여 공연이 벌써 시작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여기에서 공연티켓 구매로 인해 제공되는 프리 드링크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수령할 때 신분증을 통해 성인 인증이 완료됐다면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이 도장은 무알콜 음료가 아닌 술을 마시게 될 경우에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만 16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나 만 18세 미만의 관람객은 성인 보호자를 동반해야 하므로 이 점도 숙지를 해두어야겠다. 



드럭 스토어에서는 크랜베리 주스, 오렌지 주스와 같은 무알콜 음료는 물론이고 진 토닉, 보드카(크랜베리 or 오렌지), 하우스 와인(레드), 샴페인으로 구성된 주류도 판매 중이었다. 우리는 초대권 당첨으로 간 거라서 음료 쿠폰과 도장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진열대에 가지런히 정리된 마실거리와 메뉴판을 살펴보는 일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오렌지 주스는 굉장히 익숙한 비주얼을 갖고 있어서 웃음이 났다. 크랜베리 주스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해서 이와 관련된 얘기를 지인과 나누게 됐는데, 바로 앞에 계시던 관객분이 맛없다고 비추하셔서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떤 드링크가 제일 괜찮냐고 여쭤봤더니 오렌지 주스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와서 빵 터지고야 말았다. 


웰컴 드림크 개념의 무료 음료는 드럭 스토어 외에 2층 개츠비 맨션 속 파티장에 마련된 바에서도 마시는 것이 가능하니, 인터미션을 이용해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공연장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쉬는 사이에 목을 축이고 싶어지기 마련이고, 음료컵이나 술잔이 이동할 때 불편함을 경험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대신, 파티에 와 있는 기분을 극대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할 테니 선택은 나 자신의 몫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프리 드링크는 정해진 메뉴 안에서만 고를 수 있고, 더 마시려면 카드 결제만 되니 이를 감안해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가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소지품을 넣어 가지고 다닐 미니백 사이즈의 작은 가방을 숄더백 형태로 메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봤다. 우리는 휴대폰만 주머니에 갖고 들어가서 인터미션 때 잠깐, 포토타임 때 잠깐 사용했지만.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만큼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이건 기존에 봐온 공연과 같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배우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로지가 안내해 주는대로 계단을 따라 줄 맞춰 올라가다 멈춰서서 주의사항을 새겨 듣고 문 열린 파티장으로 들어서니 심장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공연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메인 스테이지를 메인룸으로, 안쪽에 여러 개의 아담한 스몰룸을 시크릿 룸으로 지칭하며 선택한 장소에 따라 색다른 재미를 마주하도록 도왔다.


메인 스테이지 앞쪽에 설치된 무대 위에는 피아노,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자리하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바가 준비된 상태였다. 우리가 올라 온 입구 근처에 화장실이 존재했으며, 메인 스테이지 뒷쪽으로는 스몰룸이 숨겨져 있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공연은, 무대 중간 즈음에 위치한 벽 앞의 발판 위로 닉이 올라서서 내레이션을 하는 것으로부터 포문을 열었다. 시간이 흘러 닉의 내레이션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관객의 선택으로 인하여 스토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캐릭터를 따라 발빠르게 움직여야만 원하는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가능하므로 배우들의 모습과 동선을 눈과 발을 총동원해서 놓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했다.


우리는 총 6개의 스몰룸을 직접 만났고, 첫관람 치고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두게 돼 만족스러웠다. 그중에서도 데이지의 서사를 좀 더 깊이있게 맞닥뜨릴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지금부터는 파티에 초대받아 다녀 온 개츠비 맨션 속 스몰룸 탐방기를 얘기할 예정인데,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해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바다.



1. 개츠비 서재(투자설명회)

메인 스테이지에서 개츠비를 따라 그의 서재로 들어갔더니 사업 제안을 받게 되었고, 로지가 나눠주는 개츠비의 명함까지 획득하는 행운을 얻었다. 중간에 손님들을 위해 개츠비가 마련해 둔 술 한 잔까지 마시게 되자 흡족함이 더해졌다. 진토닉이라고 하던데, 입맛에 매우 잘 맞았다. 


서재를 누비던 개츠비가 이곳에 온 손님들에게 이름과 직업을 묻고, 큰 돈이 생기면 뭘 하고 싶은지 질문하고, 퀴즈를 내서 맞춘 주인공에게 좋은 술을 대접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에 이곳의 모든 관객들이 배우의 면모를 드러내는 점 역시도 인상깊었다. 그 와중에 들이닥친 조던과 수행원 1, 2, 3, 4로 인해 사업 얘기는 잠시 중단됐지만 또다른 에피소드를 확읺아게 돼 흥미진진했다. 수행원 4명은 관객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조던의 지시에 따라 독특한 포즈를 보여주던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조던과 수행원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개츠비가 2명의 관객을 데리고 다른 공간으로 사라지면, 로지가 명함 사용법을 알려주므로 그에 따른 미션을 수행하면 된다. 이로 인해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동안 로지를 은밀하게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됐다. 


2. 개츠비 서재(제스처 게임)

우리가 선택한 두 번째 스몰룸도 어쩌다 보니 개츠비 서재에서 펼쳐졌다. 데이지가 문 앞에서 도움을 청하며 여성 관객들만 데리고 들어와 이곳의 주인이자 파티를 연 주최자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톰이 방으로 발을 디디자 제스처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며, 재치있게 넘어가는 상황을 모두 함께 만들어냄에 따라 암묵적인 유대감이 싹트게 됐다. (톰 제외)


톰이 문제를 내고 관객이 답을 맞췄더니 결혼식에 왔던 인물 중 1명이 되는 과정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3. 데이지의 방(첫사랑)

톰이 떠나고 나서 데이지를 따라 들어간 스몰룸에선 그녀의 첫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이 가능했다. 개츠비와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데이지의 마음과 톰을 향한 애증이 동시에 전해져 와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데이지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손을 든 관객들에게 또다른 질문을 던지던 장면도 감명깊었다. 톰과 결혼했지만 첫사랑은 아니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니까 놀라던 데이지. 이에 대한 이유로 첫사랑과 결혼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이야기를 관객 한 분이 꺼내자 그제서야 데이지도 수긍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인 페미의 사진도 보여줬는데 정말 귀엽고 예뻤다. 하지만 페미가 바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직접 듣게 되니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딸이 있다면 뭘 가장 해주고 싶냐는 데이지의 물음에 응답한 관객의 대답도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딸의 꿈을 지지해 줄거라는 한 마디. 그 말에는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다가 닉이 와서 티파티 얘기를 꺼냈고, 그래서 우리는 다같이 또다른 스몰룸으로 이동했다.  


4. 데이지의 드레스룸(티파티룩)

티파티에 초대된 데이지를 위해 관객 중 두 사람이 직접 옷을 고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는데 그때 다시 조던과 수행원이 나타났다. 데이지의 드레스는 조던이 고른 의상으로 결정됐고 그리하여 모두가 밖으로 나가 메인룸에서 진행되는 티파티를 맞닥뜨리게 됐다. 


5. 조던과 닉의 방(5달러 내기) 

1막에서 마주한 스몰룸은 데이지의 드레스룸까지 4개였고, 2막에선 2개가 다였는데 닉과 조던의 방은 데이지와 개츠비가 셔츠를 날리며 사랑을 나누는 침실로 가다가 인원 수 제한으로 잘려서 들어가게 된 거였다. 아쉽게도 개츠비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눈으로 직접 볼 기회는 놓쳤으나 그전에 스몰룸과 스몰룸을 이동하는 동안, 공간의 생김새를 잠깐이나마 스치듯 만나보고 지나칠 수 있었기에 다행스러웠다. 


거침없이 할 말을 내뱉는 조던과 쑥맥의 결정체인 닉이 5달러를 걸고 내기하는 방도 유쾌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라 시선을 집중시켰다.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장면으로, 이머시브 공연을 위해 창작된 부분 같은데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6. 데이지의 방(자동차 사고 후)

자동차 사고 후 데이지를 달래기 위해 톰의 부탁을 받아 들어간 마지막 방은 페미의 사진을 봤던 그곳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데이지에게 쉽게 말을 건네기 힘들었는데, 때마침 들어온 톰이 아내를 안심시켜주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는 말을 꺼내야 했던 데이지의 진심이 슬프게 들려왔고, 톰이 약속을 하긴 했는데 믿어도 되는 걸까 싶어 의심의 눈길을 보낸 건 전혀 비밀이 아니다.



공연 시작 전에는 스몰룸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많은 스몰룸을 탐방할 수 있어 즐거웠다.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배우들이 말을 걸어줘서 그게 참 신기하고 재밌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배우들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하여 노래 부르는 목소리를 보다 가까이서 듣는 게 가능했단 점도 의미심장했다. 앞, 뒤, 옆, 어디에서든 뿅 나타나는 배우들의 존재감이 남달랐던 공연이었다고나 할까? 


1막 초반에 닉의 내레이션 이후 음악이 나오면서 갑자기 댄스 파티가 벌어졌고, 배우들을 따라 찰스턴 댄스 동작을 익히며 춤을 추게 돼서 이머시브 공연의 저력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도 뜻깊었다. 


연극과 뮤지컬의 가운에 놓인 작품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음악극에 가까운 공연이기도 했다. 그치만 메인 스테이지에서 계속 음악이 흘러나오는 상태는 아니었기에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아무래도 공연 한 편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으며 여운을 경험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관객이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할 만한 작품임은 인정한다. 또한 스몰룸의 개수가 정해져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것도 볼만 했다. 



[CAST]

제이 개츠비 : 강상준

데이지 뷰캐넌 : 이서영

닉 캐러웨이 : 마현진

톰 뷰캐넌 : 이종석

조지 윌슨 : 박성광

조던 베이커 : 홍륜희

머틀 윌슨 : 정해은

로지 로젠탈 : 김찬휘

루실 : 이지은


출연진들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개성을 뽐내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로지와 루실은 원작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머시브 공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새롭게 탄생됨으로써 파티의 무드와 이야기의 개연성에 힘을 실어줬다. 투자설명회에서 돋보인 찬휘 로지의 포스와 유머, 파티의 화려함과 수다의 꽃을 피우게 해준 지은 루실의 발랄함이 멋졌다.


윌슨 부부인 조지와 머틀은 내가 다른 스몰룸에 있을 때 관련 에피소드가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제대로 만나볼 수 없었기에 할 말이 많지 않다. 성광 조지는 탁월한 피아노 연주와 노래 실력을 메인 스테이지에서 발휘하는 것을 봤기에 감탄했고, 해은 머틀은 내가 서 있는 자리 바로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알고 귀기울이다 보니 가창력이 훌륭함을 깨닫게 돼 마음 속으로 박수를 치게 해준 장본인이었다는게 감상평의 전부임을 밝힌다.


데이지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프로 골퍼로 놀라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륜희 조던은 최고였다. 데이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져 눈여겨 볼만 했고, 배우의 강렬함이 더해짐에 따라 조던 베이커의 캐릭터가 명확하게 다가와 감탄했다. 이날 개츠비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를 기준으로 남은 인원을 새로운 방에 초대하던 륜희 조던의 "이쪽으로!"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한 마디와 함께 지인의 팔을 좀 세게 잡았던 모양인데, 인터미션이 되자마자 찾아와선 괜찮냐고 묻던 다정함마저 완벽했다. 


종석 톰은 이날 만난 배우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열연을 마주하게 해줬다. 캐릭터상 나쁜 놈이긴 한데, 배우에게 맞춤옷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싱크로율이 남달아서 눈이 절로 갔다. 머틀과 톰의 서사를 놓친 게 그래서 안타깝긴 하지만 스몰룸에서 간간히 만나볼 수 있어 즐거웠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데이지와 페미에게만 집중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목소리도 좋았고, 콧수염도 잘 어울렸던 종석 톰이었다. 1막 못지 않게 2막에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댄스 파티가 펼쳐졌는데, 이때는 톰과 가까이에서 찰스턴 댄스를 추게 됐다. 종석 톰은 춤도 잘 췄다. 그렇게 한참동안 사람들 모두가 춤에 매진하다가 잠시 후, 음악이 멈추자 나를 포함한 곁의 관객들에게 잘하셨다며 격려의 말과 박수를 보내는 모습에서 톰이 아닌 배우 본체의 자상함이 느껴져 이 또한 흡족함을 전했다. 의외의 뿌듯함을 경험하게 된 건 덤이다. 덕분에 필모까지 검색해 보게 됐는데, 뮤지컬 <더데빌> 코러스와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 멀티로 활약했다는 걸 알게 돼서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이 공연들을 다 봤기 때문이지. <위대한 개츠비>까지 봤으니, 차기작도 기대해 본다.


현진 닉은 첫인상부터가 닉 캐러웨이 그 자체였다. 원작의 유명한 문장이 닉의 음성으로 파티장에 퍼질 때 요동치던 감정이 어마어마했다. 해설자 역할로 몰입감을 더하는 모습도 감명깊었고, 발성도 괜찮았다.


데이지는 마냥 사랑스럽기만한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속에 숨겨둔 깊은 생각들을 꺼내놓을 데가 없어 불안감을 껴안고 사는 인물의 고독이 잘 드러나 안쓰러움을 유발했다. 딸을 향한 엄마의 간절함을 눈 앞에서 포착하게 되니 더더욱 그랬다. 어리석지도 않았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속 스몰룸을 통해 데이지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서영 데이지가 이러한 견해에 확신을 심어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공연 보고 나서 아이돌그룹 헬로비너스 멤버란 걸 알게 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준 개츠비는 피지컬적으로 압도하는 면이 도드라져서 눈에 쏙 들어왔다. 키가 커서 멀리서도 알아볼 순 있는데 얼굴이 작은 건 단점. 사랑밖에 모르는, 아니, 오직 데이지 한 사람 밖에 모르는 순정남의 면모가 돋보이기에 충분했다. 공연장 전체를 가득 울리는 쩌렁쩌렁한 발성을 기대했던 터라 이에 대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아서 괜찮게 봤다. 서울예술단 공연이 아닌 작품으로는 처음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하여 연기적으로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춤출 때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아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케미는 풋풋했고, 데이지와 톰의 케미는 사랑과 분노가 세월과 함께 쌓여 온 흔적이 존재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현재를 공유하는 부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연기와 노래에 춤까지, 다재다능함을 선보인 배우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였다. 노래는 조지 윌슨 위주였고 솔로 넘버가 몇곡 있긴 하지만 귀를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데이지를 중심으로 공연을 본 나에게 남는 넘버는 하나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설명해주는 춤은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출 때마다 자연스레 몸에 익었고, 반대로 배우들만 추는 춤은 안무의 난이도가 상당해서 보는 내내 감탄을 불러 일으키며 환호성을 자아내게 했다. 제일 좋았던 건 역시나 연기!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공연이었을 텐데, 멋진 작품으로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준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에 커튼콜 촬영까지 가능해서 배우들의 사진도 이렇게 남길 수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를 둘러싼 관객들의 모습을 지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지만 말이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연의 묘미를 바로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관객도 배우가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작품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 흔한 게 아니라 더 특별하게 관람하는 게 가능했던 한때였다.


그래서, 좋았다는 것이 결론. 공연장의 온도는 많이 춥지도, 덥지도 않았지만 움직이는 일이 다반사니 두꺼운 겉옷은 맡기고 입장하는 것을 권한다.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들이 퇴장하면 약 30분 동안 공연장 내에서 포토타임이 주어지는데, 스물룸 촬영은 불가능하다. 메인룸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한데, 그러다 보니까 찍을 게 별로 없었다. 조명마저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었음.


스몰룸이 여러가지 소품들로 잘 꾸며져 있던 것과 달리, 메인룸은 꽤나 휑했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샴페인 잔과 꽃병이 놓인 테이블이 그나마 파티장의 분위기를 뿜어내서 기념으로 찍어봤다. 



개막했을 때부터 궁금하긴 했지만, 초대권 당첨됐다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지인의 얘기에도 관람 전부터 많이 망설일 수 밖에 없었던 소심한 아싸의 극치에게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신선한 자극을 전해주었다. 


그렇긴 하지만, 재관람은 안 할 거다. 한 번만 봐서는 이야기의 퍼즐 전체를 맞추는 게 불가능하고, 여러 번 본다고 해도 역시나 스몰룸을 완전히 정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므로. 스몰룸은 인원이 소규모인 데다가 공간이 협소해서 배우들과 눈을 맞추며 집중하기에 최적이었으나 메인룸의 경우에는 맨앞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시에는 배우들의 머리만 간신히 볼 수 있어 힘들었다.


스몰룸 들어가는 것도 눈치게임에서 승리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공연이 파티 컨셉이라 다소 산만하긴 했지만 그래서 진짜 파티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는 건 좋았다. 인싸 관객들의 친화력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첫자막으로 끝내야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체력적인 문제도 꼽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신나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연 보는 걸 즐겼는데, 다 끝나고 내려와 물품보관소 들렀다가 지하철 타니까 체력이 방전돼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체력소모가 엄청난 공연이라는 걸 집에 돌아갈 때 알게 된 게 다행이었다. 



참신한 시도가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이러한 장르의 작품이 더 많이 무대에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재관람까진 아니더라도 자첫자막 쯤은 도전해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공연을 더 재밌게 누리고 싶다면, 영어이름과 직업 등의 설정을 미리 정해두고 가는 것도 현명하겠다. 불시에 누군가 이름을 물어오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친한 사람들과 같이 의상 컨셉 맞춰서 파티 가는 기분으로 다녀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였다. 평범하지 않은 공연에 데려가 준 지인에게도 감사!


대한민국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이머시브 공연을 보고 와서 다른 때보다 이야기가 훨씬 더 길어졌다. 그런데 이건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니, 호기심이 생긴다면 직접 체험해 봤으면 한다. 2019년 12월 21일부터 2020년 2월 28일까지였던 공연 기간이 3월 8일까지로 연장됐으니 참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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