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메피스토 :: 악마의 속삭임은 달콤하더라 (노태현, 문종원)

압구정역에 위치한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메피스토>는 체코에서 제작된 동명의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실제로 모든 이야기는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로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공연 타이틀이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인간 파우스트의 영혼을 두고 신과 내기를 시작한 악마 메피스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며 욕망을 부추기는 악마를 이길 인간은 없었으니, 결국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거래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에 이른다. 



붉은 장미가 점차적으로 시들어가며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과 '메피스토'라는 네 글자만으로 악마의 존재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드는 공연 포스터 속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바로, "인간은 언제나 불멸을 꿈꾼다"라는 카피 문구였다. 


메피스토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파우스트 박사가 거래를 수락한 건, 정의와 더불어 곁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잠시동안 몸이 바뀌었을 동안에도 학문에만 전념하던 파우스트에게 오히려 메피스토가 답답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메피스토>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불멸보단 욕망에 더 가까웠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전혀 다른 것을 욕망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인간도 악마도 결국은, 욕망 앞에 무서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주었으므로.



스토리 전개는 시놉시스대로 익숙하게 흘러가는가 싶더니, 반전에 다다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털어놓으며 놀라움을 경험하도록 만들어 깜짝 놀랐다. 이로 인하여 기대를 뛰어넘는 짜릿한 스릴과 의외의 쾌감을 확인하게 됐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안타까운 순간도 없지 않았다.


이와 함께 뮤지컬 <메피스토>는 볼거리가 풍성했던 공연으로, LED 전광판을 설치함으로써 화려함을 더한 무대 장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열차씬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파우스트 박사와 마르게타, 메피스토가 탑승한 열차 내부의 모습과 실제로 움직이던 장면이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기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추격전이 펼쳐지던 장면에서 등장한 자동차와 비행선이 떠오르던 장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현장감이 살아나던 총소리까지, 무대에 공들인 티가 제대로 나서 만족스러웠다.


무대에 비해 넘버가 전반적으로 대체적으로 잔잔함으로 인해 가창력을 폭발시키는 곡이 없다 보니 평이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공연을 떠올리다 보니 은근히 귀에 맴도는 음악이 있어서 나름대로 괜찮았다. 



[CAST]

메피스토 : 노태현

파우스트 : 문종원

마르게타 : 권민제(선우)

보세티 : 최성원

캘리 : 황한나

패터슨 : 백시호


앙상블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한 부분이 상당했기에, 그들이 선보이는 안무와 열연이 돋보이는 뮤지컬 <메피스토>였다. 패터슨 시장 역을 맡은 백시호 배우의 연기와 노래도 좋았다. 


한나 캘리는 보세티에게 끊임없이 이용 당하기만 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서 안심할 수 있었던 캐릭터였다.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장면도 눈여겨 볼만 했고, 한나 캘리의 시원한 가창력을 곳곳에서 만나보게 돼 즐거웠다.


성원 보세티는 빠체의 출시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파우스트와 맞서는 인물이자 메피스토의 장난에 놀아나며 인간에게 내재된 악의 본성을 표출하는 전형성을 갖춤에 따라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호기심을 자아냈다. 분노를 유발하지만 그 와중에 몸놀림이 유연해서 안무를 소화할 때는 저절로 눈길이 갔다. 


선우 마르게타는 다 좋았는데 넘버 부를 때 침 삼키는 소리 같은 게 반복적으로 귀에 들어와서 단점으로 남았다. 예전에 공연 관람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라 조금 놀랐다. 그리고 매번 드레스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딱 한 번 바지정장을 착용한 장면이 있어서 이때가 매우 인상깊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공연 초반에 파우스트와 힘을 합쳐 빠체가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보세티를 막는데 앞장섰던 마르게타가 시간이 흐를수록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남게 된 건 좀 당황스러웠다. 


반면에 마르게타 캐스팅 변동 역시도 심했던 만큼, 선우 마르게타가 원캐스트로 공연하는 일이 많았어서 힘을 내줬으면 싶은 찰나가 적지 않았다. 캐스팅 변경이 유독 심한 작품이었어서 더 응원하게 됐다.



일명 로피스토로 불리는 태현 메피스토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었다는 것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상태라 뮤지컬 <메피스토>에서 본 것이 완전한 첫 만남과 다를 바 없었다. 춤을 잘 춘다는 얘기도 친구에게서 들었다. 게다가 이 공연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는 첫 작품이라고 해서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보게 되니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특색 있는 목소리가 악마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졌던 데다가 몸도 진짜 잘 썼다.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엄청나서 작고 소중한 소악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나서 마주할 수 있었던 블루 수트가 매우 잘 어울려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악마의 웃음소리가 전하는 울림도 대단했다. 


신을 향한 도발과 인간을 유혹하기 위한 달콤한 작전이 실행됨에 따라 종횡무진하던 악마의 행적이 실로 과감해서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딱 한 가지만, 솔로 넘버의 클라이막스에서 조금 더 음을 길게 끌고 가다가 시원하게 내질러주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지르긴 잘 지르던데 그 부분이 짧게 마무리가 돼서 아쉬웠다. 노래도 곧잘 하니까 계속 무대에 서다 보면 어느 순간 득음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메피스토와 파우스트가 몸을 바꾸는 장면이 뮤지컬 <메피스토>에 꽤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맨 처음, 맛보기 형식으로 원하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바꿔줄 때 보여주는 동작들이 가장 환상적이었다. 파우스트의 지팡이를 이용한 움직임을 비롯한 안무들은 본인이 직접 짜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덧붙여, 1인 2역으로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를 동시에 소화해내야 하는데 그것도 잘했다. 악마에 비해선 노인이 조금 어색했지만 목소리나 몸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많아서 역시나 눈이 갔다. 1막 마지막에 다시금 몸을 바꿀 때 검은 눈동자가 자취를 감추고 흰자위만 남아서 희번뜩한 표정을 짓던 장면을 포착했을 때 역시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야 말았다. 최고! 


공연 개막이 이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된 캐스팅 변경으로 인해 한동안은 거의 혼자서 무대를 책임졌던 걸로 아는데,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생은 됐겠지만 이로 인해 실력은 분명 일취월장했을 거라 확신하니 앞으로 좋은 공연으로 자주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실력있는 아이돌이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는 걸 보는 일은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데뷔 무대를 보게 된 건 행운이 아니었을지. 



종원 파우스트는 백발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림과 동시에 안경을 착용한 채로 지팡이를 짚은 비주얼이 눈에 띄었으며, 성치 않은 몸으로 연구에 매진해 온 것이 전부였던 파우스트 박사의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러다 악마를 만나게 돼 몸을 교환함에 따라 맞닥뜨리게 됐던 종원 메피스토 역시나 찰진 활약이 두드러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굽은 허리를 쭉 펴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면서 파우스트에게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을 질책하던 장면에서 느껴지는 활기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혈기 왕성한 육신을 지녔음에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책만 들여다 보는 태현 파우스트를 안타까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고는 "귀염둥이!"를 외치던 장면도 재밌었다. 


안경을 선글라스인 양 머리 위에 꽂은 채로 보세티를 방문해서 분란을 일으키던 장면은 악마의 위험한 장난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는데, 개구쟁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드러나서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종원 메피스토의 춤도 로피스토 못지 않았다는 점, 무대를 자유자재로 휩쓸며 선보였던 골반춤은 직접 봐야 한다. 연기도, 노래도 퍼펙트, 안경 활용은 추가 점수로 인정.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를 맡은 두 배우의 합이 척척 잘 맞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던 뮤지컬 <메피스토>였다. 디테일적으로 맞춘 부분이 눈에 쏙 들어와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러운 호흡을 객석에서도 마주할 수 있게 해준 점이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엔 다소 부적절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서 인터파크 티켓에 작성된 '미치학아동입장불가'라는 관람등급을 수정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김성수 음감의 지휘는 여전히 강렬했고, 덕분에 커튼콜이 끝나고 암전 후에 음악이 그칠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엔딩곡의 사운드가 전한 여운 또한 남달랐기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난 뒤에야 퇴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좋았고. 



인간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잊게 해주는 약인 빠체를 사이에 둔 파우스트와 보세티의 대립, 파우스트의 영혼을 걸고 이루어진 신과 악마의 대결이 욕망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발현되었던 공연의 의미가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신이 인간을 아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 스스로가 증명해 낸 작품이자 악마 역시도 신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며 질투할 줄 아는 존재임을 알려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했던 공연임을 오래도록 기억해 두려고 한다. 


신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며 내뱉은 한 마디, "보기 좋았더라."는 말에 담긴 깊이를 되새겨보며 악마가 고군분투함에 따라 승리를 쟁취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뮤지컬 <메피스토>였다. 덧붙여 이를 통해 얻은 또 하나의 결론은 이거였다. 악마의 속삭임이 초콜릿보다 훨씬 더 달콤해서, 공연에 빠져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 막이 내리기 전에 또 보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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