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 예술가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다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는 음악가 베토벤의 예술적 성취가 아닌, 인간 베토벤의 삶을 재조명하며 색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눈여겨 볼만 한 작품이었다.
아들이 모차르트를 넘어서는 예술가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압박과 폭력 속에서 끊임없이 피아노 연습을 이어가야 했던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를 지나 백발이 무성한 노년기까지 만나보는 것이 가능함에 따라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까지 알게 돼 흥미로웠다.
공연 속에서 인물들의 서사로 인한 갈등이 휘몰아친 덕분에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강강강강 노선 그 자체였다. 어쩌면, 마리와 발터가 폭풍우와 함께 베토벤을 방문한 것도 그저 우연은 아니었을 거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었을 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마리와 발터를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을 대하던 태도와 조카 카를을 향한 어긋난 애정의 결과물로 표출된 집착은 그의 아버지가 보여줬던 폭력성과 닮아 있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로 인해 맞닥뜨린 카를의 선택도 충격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베토벤을 루드윅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아이였는데......
이 작품은 베토벤이 주인공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인 캐릭터는 마리 슈라더였다. 건축가를 꿈꿨으나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마리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맞섰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닫힌 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하던 것도 잠시, 마리가 다시 일어나 또다른 꿈을 이뤄나가며 살아가게 된 장면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다만, 극의 진행에 있어 강약 조절은 좀 필요해 보였다. 스토리 전개도, 넘버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강강강 노선으로 이어졌던 터라 피로함이 몰려올 때가 존재했음을 밝힌다. 그치만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게 잘 봤다. 덧붙여, 손수건을 챙겨 가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이명으로 인해 고통받는 루드윅의 모습이 조명과 어우러졌을 때 강렬함이 도드라져 만족스러웠고, 무대 연출과 소리를 다채롭게 활용한 장면들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줌으로써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풍성한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CAST]
루드윅 : 테이
카를 : 이용규
마리 : 김지유
발터 외 : 차성제
피아니스트 : 강수영
공연을 먼저 관람한 친구의 영업과 50% 할인에 힘입어 예매를 완료했고, 커튼콜엔 기립으로 배우들의 열연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다섯 배우들의 합이 완벽해서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으므로.
강수영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그중에서 미래의 음악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인물로 분했기에 존재감이 더해져 의미가 있었다. 정체의 반전이 그가 맡은 역할과도 잘 맞아 떨어져 100% 싱크로율을 선보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슈영
발터와 어린 시절의 루드윅으로 각기 다른 개성을 마주하게 해준 차성제 배우는 연기도 훌륭했지만, 라이브로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가 환상적이라서 감탄을 자아냈다.
지유 마리는 캐릭터와 일심동체가 되어 절절한 연기와 시원한 가창력을 확인하게 해줘서 등장하는 매 순간마다 마음을 울렸다. 시대가 외면한 마리의 재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눈물이 하염없이 차올랐다. 앞으로 좋은 공연에서 자주 봤으면! 다른 배우들은 1인 다역으로 무대를 오갔는데 지유 마리는 오직 마리 슈라더로 그곳에 있어서 짜릿했다.
이용규 배우는 베토벤의 조카 카를과 청년 시절의 베토벤을 맡았는데 두 역할의 온도차가 어마어마했다. 다소 날카롭고 예민한 성정을 갖춘 베토벤과 앞머리를 이마 위로 가지런히 내리고 동그란 안경을 착용한 채로 순진무구함을 내보이던 카를은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었다.
청년 시절에 겪어야 했던 좌절이 용규 베토벤으로 인해 극대화돼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전해져 왔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물들인 절망의 온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카를은 달랐다.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지 않아 바람을 쐬러 나가겠다던 용규 카를에게 삼촌이 바람 같은 곡을 치자고 했더니, 건반을 뚱땅 거린 뒤 바람이라고 이야기할 땐 정말 귀여웠다. 이러한 이유로 삼촌의 말을 쉽사리 거역하지 못하던, 루드윅 삼촌을 사랑했던 카를이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키며 거침없는 결정을 했을 때 무척 놀랐다. 게다가 노래는 더 최고!
이 공연의 타이틀 롤인 루드윅은 테이가 맡았다. 이제는 가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 테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적응이 된 게 보여서 흡족했다. 특히, 능숙한 연기와 단단해진 발성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괴팍함이 묻어나는 베토벤의 겉모습 또한 멋지게 재현해내서 내적 환호를 불러 일으켰다. 노년의 베토벤이 되었을 때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세월의 흐름 역시도 감명깊었다.
테이의 뮤지컬 데뷔작인 '셜록홈즈 : 앤더슨가의 비밀'을 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호평이 자자한 걸 보니 괜히 내가 더 흐뭇해진다. 테이 공연을 셜록 이후에 루드윅으로 오래간만에 만났더니 이런 기분이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오페라스타 시즌1'에서 우승했을 때도 정말 깜짝 놀랐는데, 뮤지컬 배우로 자리잡은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결론적으로 테드윅, 진짜 좋았다.
이날 공연에서는 스페셜 커튼콜이 연달아 이어져 감동이 극도에 달했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에필로그, 작품의 명장면을 다른 배우들이 노래와 함께 보여주던 순간도 감격스러웠다.
베토벤이 작곡한 음악들 역시도 공연 안에서 잠시나마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예술가 특유의 강렬함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곡들로 가득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오직 한 대의 피아노 연주만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마주할 수 있어 뜻깊은 한때이기도 했다.
테이 배우와 용규 배우의 듀엣은 물론이고 지유 마리와의 삼중창도 대단했다.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토리 보단 넘버가 와닿는 게 더 많았던 뮤지컬이었음을 밝힌다. 폭풍우 같은 절망이 온몸을 휘감던 과거와 현재를 지나 새로이 맞이하게 될 미래를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희망과 더불어 음악을 얘기하던 것이 음악가다워서, 힘찬 박수로 멋진 공연을 보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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