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결투 :: 오늘도 변함없이 어지러운 강호 풍경 (박경호, 조성필, 유성재, 이세헌)

 

뮤지컬 <결투>를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만났다. 이날도 변함없이 어지러운 강호 풍경 속에서 대마두와 얽히고 설킨 천천과 비룡, 취선과 맹도, 풍운쌍검, 그리고 점소이의 이야기가 펼쳐져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초연과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소소한 차이점이 눈에 띈 가운데서 기존 캐스트와 뉴캐스트의 어우러짐이 만족스러움을 전해서 재밌게 잘 봤다.
 

 
다만, 프리뷰를 지나 본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도 여전히 운영상의 문제가 도드라져 고개를 내저어야 할 때가 상당했기에 아쉬웠다. 이럴 거면 굳이 빨리 올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 다한 거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인기가 많았던 작품을 1년도 채 안돼서 다시 올리는 것이 대한민국 공연계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역력한데, 퀄리티마저 떨어지면 굳이 더 볼 이유가 사라진다. 티켓값과 예매수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만큼, 부디 이에 상응하는 공연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날 내가 본 뮤지컬 <결투> 재연 캐스트는 위와 같았다. 천천 역 박경호, 비룡 역 조성필, 취선 외 역 유성재, 맹도 외 역 이세헌이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뽐내서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천천은 불처럼 뜨겁지만 순수했고, 비룡은 풍운쌍검의 복수만을 위해 달려왔으나 일심문 제자가 되어 취선을 사부로 모심에 따라 전환점을 맞이하던 순간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로 인하여 사형 천천과 사제 비룡의 돈독한 우정과 더불어 둘이 함께 대마두를 무찌르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감명깊었다. 이와 함께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천천이 자신의 사명이 복수 뿐임을 피력할 때 비룡은 복수보다 사형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눈여겨 볼만 했다. 상황에 따른 캐릭터의 반전이 이목을 잡아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취선과 맹도의 관계를 포함하여 길 위에서 풍검, 운검과 인연을 맺은 비룡의 사연 및 용마주루의 점소이가 품고 있던 아픈 속내가 드러나며 대마루와의 결전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도 대단했다. 취선과 맹도 역을 맡은 배우들의 멀티 캐릭터 소화력이 기대 이상이었고, 천천과 비룡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강호인의 면모를 보여줘 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채로운 액션씬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무협 장르에 걸맞는 음악도 귀를 기울이게 도왔다. 극에 스며든 놀라운 웃음 포인트와 감동도 취향에 잘 들어맞아 이번에도 역시나 짜릿한 관람을 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 마주하게 된 뮤지컬 <결투>의 스페셜 커튼콜은 '내가 잘못 가르친 것인가'였다. 비급에 관심 없어 보이는 천천과 비룡으로 인해 속이 타들어가던 취선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다. 둘이서 티격태격하기 바빠 취선이 바닥에 펼쳐 놓은 비급의 내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은 점프해서 뛰어넘고, 비룡은 거리낌없이 발로 밟는 장면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천천의 실수로 옷에 불이 붙자 이를 끄기 바쁘던 비룡의 모습이 폭소를 만발했다. 그걸 본 취선은 불조심하라는 조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호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흡족했다. 경호천천은 손바닥을 쫙 펴고, 성필비룡은 주먹을 쥔 상태로 서로의 손을 맞대며 포권례 자세를 취하던 장면도 잊지 못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