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후크 ::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 어디쯤의 네버랜드 (최호승, 김도빈, 김주연)

뮤지컬 <후크>는 올해 처음 무대에 오른 초연 창작극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소설 '피터팬'에 등장하는 악역으로 명성이 자자한 후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이 작품을 집필한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의 자전적 내용 일부를 소재로 활용한 점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런던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제임스는 형 데이빗이 어린 시절에 실종되고 난 뒤부터 자신을 데이빗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와 매일 밤 기묘한 놀이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머니마저 사라져 버린 어느 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간절함을 내비치던 제임스의 귓가에 들려온 의문의 속삭임이 그를 네버랜드로 안내하며 뜻밖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곳에서 피터와 웬디를 만난 후크는 악당이 되어달라는 두 사람의 말에 당황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서서히 빌런으로 자리매김하며 현실을 잊고 네버랜드에 푹 빠져든다. (지금부터 끄적이는 얘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됨을 미리 밝힌다)

 

이로써 과거에 읽었던 피터팬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던 뮤지컬 <후크> 속 네버랜드는 서사가 전개될수록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중에서도 제임스가 후크로 나서게 된 이유가 네버랜드의 스토리텔러이자 거짓말쟁이와 다름 없었던 웬디의 음모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게 돼 놀라웠다. 게다가 피터 또한 웬디의 꼬임에 넘어가 환상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영위하게 된 거라는 설정도 인상깊게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커다란 약속으로 후크는 갈고리(지팡이), 피터는 단검, 웬디는 보라색 리본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이와 함께 웬디의 말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후크라는 배역에 동화되어가던 제임스의 모습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웬디가 탄생시킨 네버랜드는 꿈과 모험으로 가득한 환상의 나라가 아니라 수많은 거짓과 환각으로 뒤틀린 세계였으므로, 감춰져 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참혹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순간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 때가 없지 않았다. 

 

참고로 이날은 뮤지컬 <후크>의 실황 촬영이 진행되었고, 그로 인하여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며 안방 1열에서 온라인 중계를 통하여 공연을 시청하게 될 관객들까지 챙겨주는 배우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후크 역의 최호승, 피터 역의 김도빈, 웬디 역의 김주연은 본페어는 아니었으나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에 동반 출연했던 적이 있어 엘레나 페어로 불리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세 배우 모두 제 역할을 멋지게 해내서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후크 역을 맡은 최호승은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겸비한 캐릭터로 탁월한 연기를 선보이며 웃고 울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린 채로 가뿐하게 밧줄을 타는 장면을 통하여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확인하게 해줘 눈이 번쩍 뜨였다. 외투를 찰지게 날리며 지팡이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모습도 멋졌다. 그 속에서 지팡이를 "Zㅣ"팡이, 보여주지를 보여"ZUZI", 이렇게 "ㅈ"이 들어간 단어에 "Z"를 넣어 발음할 때 웃음이 빵 터졌다. 덧붙여 노래할 때의 중저음이 매력적이었으며,  관객들을 꼬마라고 칭하던 순간도 잊지 못할 것이다. 후크와 피터의 액션씬도 스펙타클했다. 

 

하지만 최호승의 후크가 유독 강렬한 여운을 전해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피터가 떠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고개 숙인 채로 눈물 흘리던 후크,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가 후크로 보냈던 네버랜드에서의 한때가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데 있어 커다란 원동력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 역으로 본 김도빈은 영원히 늙지 않고 아이로 남은 피터팬 그 자체였어서 눈길이 절로 갔다. 천진난만하기 그지 없는 소년에 가까웠고, 웬디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순종적인 면모가 도드라졌다. 그러나 제임스가 후크로 나타나며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른 각성이 불러 일으킨 찰나가 마음을 울릴 때가 있었다.

 

 

더불어 개구쟁이 피터로 예상을 뛰어넘는 엉덩이춤과 탈춤을 맞닥뜨리게 도왔고,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싱어롱을 이끌어 내서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엘레나 페어의 무대가 촬영된 뮤지컬 <후크> 실황 영상을 중계로 볼 때 놀라지 말기를 바란다. 약간의 싱어롱을 곁들인 마무리가 나쁘지 않았다. 

 

웬디 역의 김주연은 심상치 않은 광기를 뿜어내며 좌중을 압도했다. 제임스와 데이빗의 어머니 마가렛 같은 경우에는 음산함이 두드러졌고, 웬디일 땐 또라이 기질을 발산하는 캐릭터로 무대 위를 종횡무진해서 재밌었다. 팅크의 위력에 힘입어 네버랜드를 장악한 지배자의 음험함과 괴상함이 대단했다. 한 마디로, 좋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재관람을 했더니 타이거 릴리로 나오면서 호랑이 귀 머리띠를 더 이상 착용 안 하고 양갈래로 묶은 헤어 스타일로 대체한 것이 포착돼 신선했다. 자첫자막으로 끝내기엔 배우들의 열연이 눈에 선하고 마성의 넘버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공연장을 다시 찾은 거였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무대 연출도 훌륭했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3층(객석 1층)과 4층(객석 2층) 로비에 후크와 피터 캐릭터를 표현한 마루인형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처음 발견하게 돼 사진으로 담아봤다. 웬디는 2층 엠디부스에 있다는 것 같았는데 깜빡 잊었다. 대신에 피터가 머리에 착용한 리본이 있으니 다행인 걸로. 보라색이 아닌 초록색 리본이긴 하지만. 

 

이번주에 막공이 예정되어 있는 관계로, 뮤지컬 <후크> 관람 후기를 늦지 않게 쓰려고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린 하루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 어디쯤의 네버랜드를 마주하는 일이 가능해 즐거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