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난쟁이들 :: 마법사가 들려주는 어른이들을 위한 동화나라 이야기

뮤지컬 <난쟁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잊고 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으로, 예측불허의 유쾌함과 발칙함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특히, 객석으로 지연 입장함과 동시에 관객들을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걸며 등장한 마법사가 무대 위에 안착함으로써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들의 연령대에 걸맞는 재미와 감동이 존재하는 특별한 세계로 안내해서 단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난쟁이 마을에 사는 찰리는 동화나라 무도회에서 진실한 키스를 하는 커플이 새로운 동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산에서 보석을 캐내 생활하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기 위하여 야망을 불태우며 길을 나선다. 이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중 일곱 번째 난쟁이였던 할아버지 빅이 찰리와 동행한다. 죽기 전에 사랑했던 백설공주를 다시 한 번 만나고픈 소망을 품에 안은 채로 말이다. 

 

그리하여 찰리와 빅은 신데렐라를 공주로 만들어 준 마녀를 찾아가 왕자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며 거래를 한다. 이로써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통하여 난쟁이에서 벗어난 둘은 힘차게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동화를 재구성함으로써 탄생된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은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가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 전개를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그 속에서 빅이 나이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잊혀져 갔기 때문임을 언급한 부분이 감명깊었다.

 

각기 다른 꿈을 보유한 찰리와 빅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가 동화책에 쓰여진 결말 이후의 고단한 삶을 얘기하던 순간도 심금을 울렸다. 그 속에서 공주의 신분으로 태어난 백설, 평민이었으나 왕자와 결혼해 공주가 된 신데렐라, 두 사람과 다르게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된 인어공주의 비하인드를 확인하게 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찰리와 빅이 드디어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와 마주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던 빅과 백설, 찰리가 왕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을 떠올리며 행복을 빌어주려 아낌없이 희생하던 인어, 이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되려 종횡무진하던 신데렐라의 모습을 보는 내내 웃고 울었다.

 

덧붙여 공주들과 난쟁이들의 조력자로 백마 탄 왕자1, 2, 3이 맞닥뜨리게 해준 존재감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뮤지컬 <난쟁이들>을 보고 나오면 넘버 '끼리끼리'가 입에 맴돌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참고로 내가 본 날의 캐스팅은 찰리 역 기세중, 빅 역 조풍래, 인어공주 역 정우연, 백설공주 역 한보라, 신데렐라와 왕자2 역 남민우, 왕자1과 마법사 역 이경욱, 왕자3과 마녀 역 주민우가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쳤다. 이중에서도 이경욱 같은 경우에는 마법사와 왕자1 외에도 거인, 경비병, 난쟁이 등의 다채로운 멀티 캐릭터로 쉴새 없이 나타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와 함께 기찰리와 풍빅은 재치 넘치는 애드립 페어로 놀라운 티키타카를 접하게 도와서 폭소가 만발했다. 마녀를 찾으러 어두운 숲 속을 걸어가던 도중 가방 안에서 촛불이 켜진 상태로 반짝이고 있던 걸 발견한 찰리가 가방이 타고 있다는 말로 능수능란한 대처를 만나보게 해줄 땐 놀라움이 앞섰다. 그리고 풍빅이 박진영의 노래 '엘리베이터' 몇 소절을 불렀는데, 이 노래를 알지 못했던 기찰리가 버튼을 누른 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웃음이 빵 터졌다. 

 

우연인어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중심으로 쿼카 같은 얼굴과 달콤한 목소리를 보유한 인물로 기찰리를 표현하며 같이 노래하자는 말을 내뱉어 공감이 절로 갔다. 보라백설은 탁월한 가창력으로 귀를 사로잡았으며, 찰리와 빅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애처롭게 경비병을 부르던 민우렐라의 간절함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다. 주민우의 왕자 3은 귀여웠고, 마녀의 몸놀림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백설과 빅의 절절한 로맨스, 찰리와 인어의 심금을 울리는 로맨틱 코미디가 마냥 동화같지 않아서 더 신경이 쓰였다. 다만, 내용상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대사와 장면들이 상당하므로 이 부분을 고려해서 관람을 하길 바라는 바다. 이에 따른 호불호는 갈리기 마련인데 나는 재밌게 잘 봤다. 

 

동화 속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새롭게 써내려간 공연의 묘미가 기대 이상이라 좋았던 뮤지컬 <난쟁이들>이었다. 어릴 때 읽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바탕으로 재창작해서 흥미로움이 극대화된 것도 사실이다. 

 

무대 위 배우들과 객석의 관객들이 하나되어 즐기며 산뜻한 마무리를 맞닥뜨릴 수 있었던 점도 뜻깊었다. 

커튼콜 촬영은 금지였지만, 공연 전 무대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흡족함을 안겨주었다. 객석 앞쪽에 설치된 무대 말고도 위와 같이 2층 왼쪽 객석 부근에 호박마차, 오른쪽 객석 근처로 시계, 진주, 소라고둥 등이 장식된 것을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아봤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공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품이 눈여겨 볼만 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의 거울은 무대 왼쪽 상단에 위치해 있으니 이 또한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와 똑같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주인공들이 출연하는 동화 한 편을 읽는 기분으로 관람한 뮤지컬 <난쟁이들>이었다. 배우들이 잘하고 킬링넘버가 적지 않은 것이 장점이지만, 아무래도 B급 감성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므로 유머코드가 잘 맞아야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겠다. 그치만 극에 일단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긴 힘들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