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정년이 :: 웹툰에서 튀어나온 매란국극단의 소리를 만나다

서이레 작가의 글과 나몬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져 탄생됨에 따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네이버 웹툰 <정년이>가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 <정년이>로 무대 위에서 초연이 이루어지며 짜릿함을 선사했다. 특히, 개막을 앞두고 전회차 조기 매진을 달성하자 2023년 3월 17일 금요일부터 3월 26일 일요일까지로 예정되었던 공연을 3월 29일 수요일에 막을 내리기로 결정하며 연장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게 돼 깜짝 놀랐다. 허나 이 또한 금방 전석 매진이 되었다고 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 또한 웹툰 <정년이>를 재밌게 봐온 입장이었던지라 티켓 오픈 당일에 예매를 완료했는데, 덕분에 무려 네 달의 기다림을 감수했음을 밝힌다. 이와 함께 티켓팅을 하고 난 뒤에야 더블 캐스팅으로 구성된 정년이 역 배우가 뒤늦게 공개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국립창극단의 소리꾼들 모두를 애정하는 건 맞지만, 한 번 뿐인 관람에 있어 선택권이 좀 더 많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CAST]

윤정년 : 이소연

강소복 : 김미진

허영서 : 왕윤정

권부용 : 김우정

백도앵 : 서정금

박초록 : 민은경

채공선 : 김금미

고사장 : 이연주

임진 : 정미정

한기주 : 허애선 

가수 외 : 최용석

피디 외 : 박성우

국회의원 외 : 김수인

홍주란 외 : 한아윤

문옥경 외 : 이나경

고삐리 외 : 김기진

 

국립창극단 <정년이>의 줄거리는 소리 하나 만큼은 자신 있는 목포 소녀 윤정년이 여성국극단의 배우로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에 안고 매란국극단 연구생으로 들어가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인 스토리 구성은 웹툰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138화로 완결된 작품을 11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모두 보여줄 수는 없었던 관계로 필요한 부분만 압축하여 서사가 진행되다 보니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의문스러움이 떠오를 여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극중극으로 '춘향전', '무영탑의 전설', '자명고'를 만나볼 수 있었던 점도 뜻깊게 다가왔다. 웹툰 <정년이>에서의 순서와는 조금 달랐지만, 덕분에 결말마저 창극만의 개성 넘치는 매력이 뿜어져 나와 탄성을 내뱉게 될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1950년대를 풍미한 여성국극을 소재로 펼쳐지는 내용이 심금을 울렸다. 

 

 

그런 의미에서 통통 튀는 발랄함이 돋보였던 이소연의 윤정년을 중심으로 국립창극단 소리꾼들의 멋진 활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허영서 역 왕윤정의 카리스마가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리본 머리끈의 존재감도 마찬가지. 권부용 역 김우정의 청명한 소리와 더불어 껍데기를 벗어던진 채 도약하는 캐릭터의 싱크로율도 좋았고, 꾀꼬리 같은 청아함을 뽐낸 홍주란 역 한아윤도 마음에 남았다. 백도앵 역 서정금은 정년이의 짝선배로 유쾌함과 털털함을 마주하게 도왔고, 방자 역을 맡게 된 정년이에게 가르침을 전수한 고사장 역 이연주와 절절한 '추월만정'을 들려준 정년의 어머니 채공선 역 김금미도 대단했다. 

 

작창과 음악감독으로 나선 이자람도 제 역할을 다했다. 무엇보다도 국립창극단 단원들의 열연에 힘입어 웹툰에서 튀어나온 매란국극단을 생생하게 맞닥뜨리게 돼 만족스러움이 컸다. 덧붙여 공연 전 안내멘트 중 "이 극장을 가득 채워주신 모든 정년이들에게" 라는 한 마디가 유독 감동을 자아낼 때가 있었다. 목소리가 익숙해서 혹시나 싶었는데, 엘아센 하메 분이 맞는 듯 해서 반가웠다. 

 

매란국극단 연구생들이 신명나는 멜로디에 맞춰 소리를 하며 안무를 선보이던 순간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윤정년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된 조유아가 씬 스틸러로 눈길을 잡아끌 때가 없지 않아 이 역시도 금상첨화였다. 조유아의 윤정년도 보고팠으나 자첫자막으로 국립창극단 <정년이>를 보내게 돼 조금 슬펐다. 

 

대신에 창극 <정년이>의 클라이막스는 '자명고'가 담당하며 강렬함을 남겼다. 자명고를 진짜 북이 아닌 커다란 천을 활용하여 표현한 점이 멋졌고, 장수로 등장한 허영서의 기개에 푹 빠져버렸다. '자명고' 같은 경우에는 허영서와 홍주란의 서사가 굉장한데 이 부분은 원작 웹툰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정년이에게만 초점을 맞춰도 시간이 훌쩍 가버려서 국립창극단의 선택이 이해가 갔다. 

 

 

국립창극단 소리꾼들의 소리에 맞춰 들려오던 객석의 추임새도 흥겨움을 더했다. 창극은 무대 위의 배우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완성해 나가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돼 감동이었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몰입감 넘치는 공연을 즐기게 해준 한때가 즐거웠음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다. 

 

커튼콜에서 환호성을 자아내게 했던 최고의 순간도 저장! 국립창극단 <정년이>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층 맨끝줄 중앙블럭에서 관람했는데, 공연장이 아담한 편인 데다가 좌석 간의 간격이 넓어서 쾌적한 시야와 나쁘지 않은 착석감을 자랑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설치된 귀여운 회전무대도 눈여겨 볼만 했던 작품이었다. 장단점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하루였지만, 꼭 만나봐야 하는 공연임에는 분명했기에 보길 잘했다 싶었다. 

 

산뜻한 출발을 확인하게 해주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수정과 보완을 거쳐서 국립창극단만의 <정년이>를 구축해 나갔으면 좋겠다. 웹툰과 창극을 섭렵했으니까 남은 건 드라마 뿐! 이제는 드라마 <정년이>가 눈 앞에 나타날 그날을 애타게 기다려 본다. 창극 <정년이>와의 재회도 당연히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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