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라이 :: 브릭스턴 아카데미 카드게임 절망 편 (유태율, 이지연, 선유하 외) - 스포있음

창작 초연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뮤지컬 <일라이>를 드디어 만났다. 상류층 엘리트들이 모인 브릭스턴 아카데미에 다니며 제1대학 입학의 꿈을 이루고자 모의법정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친구들 곁으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눈여겨 볼만 했다. 

 

 

가난한 노력파 우등생 리온, 이사장 아들로 구김없이 부유하게 자란 일라이, 문제의 전학생 소피, 리온의 여자친구로 갖고 싶은 건 언제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앨리스, 공부에 관심없는 자유분방한 율리아, 뭐든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 여기는 저스틴, 학교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교장이 선보인 7인 7색 에피소드가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특히 전학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리온, 일라이, 앨리스, 율리아, 저스틴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소피의 거짓말과 더불어 뜻밖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브릭스턴 아카데미 전체가 뒤집히며 상상을 초월한 스토리 전개를 확인하게 해줘 놀라웠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CAST]

리온 : 유태율

일라이 : 박좌헌

소피 : 이지연

앨리스 : 임예진

율리아 : 선유하

저스틴 : 신혁수

교장 : 정재헌

 

리온과 일라이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으로 우정을 뛰어넘는 사랑의 감정선을 보여주며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중에서도 일라이를 향한 튤리온의 애틋한 감정적 디테일이 곳곳에서 전해져 와 감명깊을 때가 많았다. 둘의 관계성에 있어서 마음이 움직인 건 누가 봐도 튤리온이 먼저였다. 터져 나오려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제1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던 것이다. 덕택에 자신을 좋아하는 앨리스와 연인이 된 상황 자체가 이기적으로 보였지만, 제딴엔 그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금발머리의 좌라이는 친구는 물론이고 선생님들 모두와의 친화력이 남다른 인싸 캐릭터로 밝고 긍정적인 면모가 도드라졌다. 그로 인하여 장난스러움 안에 진심 한 스푼을 담아 일라이를 대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허나 튤리온이 주체할 수 없는 맘을 오롯이 드러내자 두 손으로 감싸며 애절하게 포옹에 임하던 찰나를 잊지 못할 거다. 입학시험으로 옥상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을 때 리온이 난간 밖으로 나가자 "이눔시키!"라고 호통치며 빨리 들어오라고 외칠 땐 웃겼다. 그러다 어느새 리온을 따라 몸을 덜덜 떨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던 장면에선 눈가에 눈물이 고여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치만 튤리온에게 제1대학은 생존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동아줄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 사랑을 포기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부유한 아이들 무리에서 실력만으로 살아남은 리온에게 사랑은 사치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라이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전하고도 남았다. 

 

소피는 교장의 조카로 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것도 잠시, 카드게임에서 마약의 일종인 맥스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 놓으며 허점을 드러냈고 율리아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저 친구를 원했던 소피는 순진했고, 율리아와 저스틴은 이를 이용하기에 바빴다. 리온과 맥스를 연결시킨 소문이 안 퍼졌더라면, 소피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는 일라이 뿐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환심을 사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불어닥치게 만든 후폭풍은 거셌고, 그렇기에 소피의 속내가 표출되던 솔로 넘버에서 안쓰러움이 생겨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리온을 좋아해서 맥스를 사물함에 넣었다는 율리아, 율리아에게 맥스를 포함하여 마약을 건네준 장본인은 저스틴, 리온이 일라이와만 시간을 보내자 저스틴과 몰래 달콤한 시간을 즐기던 앨리스, 사건이 벌어지자 피해자도 가해자도 중요치 않다는 듯이 뒷수습에만 목숨 걸던 교장의 비정함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도왔다. 

 

 

이와 함께 명문고에 다니는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서사가 너무나도 뻔해서 다 보고 난 뒤에는 할 말을 잃었다. 배우들이 제 역할을 잘해서 보는 재미는 쏠쏠했는데, 입체적인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라이어들로 가득한 소굴에서 홀로 자취를 감춰버린 일라이의 존재감이 서글픔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 속에서 튤리온, 지연소피, 유하율리아에게 눈이 절로 갔다. 지연소피와 유하율리아 같은 경우에는 뮤지컬 <일라이>로 처음 마주했는데 탁월한 가창력이 귀에 쏙 들어와 짜릿했다. 소피의 넘버 'No one'과 율리아의 넘버 'A secret promise'에 꽂혔다. 

 

덧붙여 튤리온과 좌라이가 맞닥뜨리게 해준 엔딩도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옥상 난간 밖에 섰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튤리온은 아예 잡을 생각조차 없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던 반면, 좌라이가 이를 예감했다는 듯이 스스로 손을 놓고 바람에 몸을 맡겨 버기는 장면이 리얼하게 표현돼 입을 틀어막게 되고야 말았다고 한다. 

 

시작은 소소한 카드게임이었다. 이에 싫증난 소피가 거짓말을 한 사람이 비밀을 말해주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모든 게 변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일라이>를 브릭스턴 아카데미 카드게임 절망 편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이날은 뮤지컬 <일라이> 스페셜 커튼콜 위크로 'Wait! if you wanna'가 커튼콜 후 시연돼서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교장을 제외한 6명의 배우들을 한 컷에 담을 수 있어 기뻤다. 소피가 전학을 왔으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중 교장의 조카임과 동시에 제1대학과 관련된 물건을 보유하고 있음을 털어놓자 그제서야 친구로 받아들이던 리온, 일라이, 앨리스, 율리아, 저스틴의 모습에 기가 찼다.

 

공연은 애정하는 배우가 있다면 볼만 하겠으나 굳이 추천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교복 입은 학생들을 무대 위에서 보게 돼 조금 설렜는데, 원했던 방향으로 나아간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었으므로 반가운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들의 조합이 훌륭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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