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빈 :: 눈물과 함께 웃으며 안녕 (김종구, 정현지, 윤현선 페어막)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로빈> 재연을 관람했다. 공연기간은 2023년 1월 9일부터 4월 9일까지로 3개월 정도 진행이 이루어졌는데, 막공주에 뒤늦게나마 자첫자막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2020년에 초연을 봤던지라 별다른 감흥이 없을 줄 알았으나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공연장을 나오게 돼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시간이었음을 인정한다. 

 

 

뮤지컬 <로빈>은 천재 과학자 로빈이 제작한 벙커 내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방사선 피폭에서 벗어나고자 도착한 우주의 행성 위 벙커 안에서 딸 루나, 구형 로봇 레온과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살아오던 로빈이 간절히 기다려 온 지구로부터의 귀환 신호를 받던 날, 일주일 후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절절함을 선사했다.  

 

그로 인하여 마주하게 된 우주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로빈, 그리고 루나와 레온에게도 잊지 못할 한때였음이 분명해 보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창작 뮤지컬 <로빈>의 무대는 위와 같았다. 삼성역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초연이 진행된 관계로,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만난 재연 무대는 규모가 다소 축소된 감이 없지 않아 보였으나 그래서 더 셋이서 티격태격 똘똘 뭉쳐 힘을 내서 살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납득이 갔다. 

 

이와 함께 안드로이드 로봇 및 복제인간이 소재로 활용된 점 또한 새삼 눈여겨 볼만 했다. 그러나 작품에서 포커스가 맞춰진 건 아버지와 딸이 일깨워주는 부녀 관계, 인간과 로봇의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까웠으므로 뮤지컬 <로빈>의 장르는 SF 판타지가 곁들여진 가족극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SF적인 요소만 따져봤을 땐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니까 이 점을 감안하기를 바란다. 

 

현선레온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면모를 드러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로페셔널한 조수 겸 다정한 집사로 눈길을 잡아끌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이다. 로빈에게 진실을 일깨워줌은 물론이고 루나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캐릭터로 완벽함을 전하고도 남았다.

 

 

비상용 조명기를 작동시키기 전에 혼자서만 눈 가리는 안경을 착용하던 현선레온과 그걸 보고 어이없어하던 귭로빈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로 인해 화를 참지 못하는 현지루나를 달래주던 장면도 흥미로웠다. 로봇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음은 말해 뭐할까 싶다. 게다가 변화된 의상이 예전에 비하여 세련된 분위기를 풍겨서 다행스러웠다. 

 

참고로 윤현선 배우는 뮤지컬 <로빈>으로 처음 만났는데, 현재 JTBC <팬텀싱어> 시즌4에서도 활약 중인 걸 보고 나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루나는 과거 여섯 살에 지구를 떠나 벙커에서 어느덧 열여섯의 나이를 맞이하며 사춘기에 다다라 사랑스러움과 까탈스러움을 한꺼번에 표출하는 모습이 눈을 뗄 수 없게 도왔다. 루나는 "섬에 갇힌 아이, 솔라"로 이름 붙인 소설을 써내려감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며 로빈을 대한 애증을 가감없이 보여주는데, 그 마음이 이해될 때가 많았다.

 

정현지 배우는 뮤지컬 <그리스>의 패티 역 이후로 오래간만에 본 거였는데, 사춘기 딸에 걸맞는 연기와 청아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넘버가 감탄을 자아냈다. 다만, 고음 파트를 열창할 때 가성 사용과 더불어 힘이 좀 부족한 느낌이 포착돼 이 점이 보완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 부분만 빼면 귀엽기 그지 없어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로빈과 갈등을 빚다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던 루나, 하나 뿐인 친구와 다름 없었던 레온과의 돈독한 우정도 감명깊었다. 루나가 기억하는 빛의 회절이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점도 따스함을 안겨주었음은 말해 뭐할까 싶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초연과 달라진 루나의 의상도 칭찬 받아 마땅했다. 3년 전 의상은 정말, 아니었다고 본다. 계단을 오르 내리는 장면이 상당한 데다가 침대에 엎드리거나 눕는 장면이 적지 않아 치마가 불편해 보였는데, 캐주얼함이 도드라지는 티셔츠와 바지로 바뀌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귭로빈은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변함없이 탁월한 존재감을 뽐내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했다. 묘하게 판소리를 연상시킨 "나는 간다~" 한 소절에 에코가 쫙 깔리던 장면과 레온과의 티키타카는 폭소를 만발했던 반면, 루나를 향한 부성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땐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여기에 더해 루나가 자신에게 소중한 딸인 것처럼, 레온도 로빈에게 소중한 아들임을 털어놓던 장면 역시도 심금을 울렸다. 

 

 

공연 초반에는 울모사라고, "울음을 모르는 사나이"라고 당당히 말해 놓고선 극이 흘러가는 동안 본인을 포함하여 관객들의 눈물과 콧물을 쏙 빼던 귭로빈의 열연에 마음이 아려왔다. 반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 여겼는데, 예상을 빗나감으로 말미암아 마스크 안으로 울음을 멈추지 못해서 혼났다. 오히려 알고 봐서 더 슬펐다. 

 

올해 김종구 배우와의 첫 만남을 갖게 해준 뮤지컬 <로빈>은 초연을 뛰어넘은 재연의 묘미를 마음에 품도록 해줘서 오래도록 못 잊을 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제대로 녹여낸 귭로빈의 연기와 언제 들어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넘버 소화력이 여전해서 보길 잘했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웃으며 안녕'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던 귭로빈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서서히 암전되던 무대가 강렬한 여운을 선물했다.  

 

[CAST]

로빈 : 김종구

루나 : 정현지

레온 : 윤현선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뮤지컬 <로빈> 재연 마지막 주이다 보니까 종구로빈, 현지루나, 현선레온의 페어막으로 공연 자첫자막을 완료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세 배우 전부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케미를 보여주었고, 캐릭터 표현까지 찰지게 해줘서 눈과 귀가 즐거웠다. 

 

넘버는 다시 들어도 여전히 좋았다. 그중에서도 '돌아갈 그 날까지', '초콜릿 케이크', '빛을 만들어', '스무 발자국', '웃으며 안녕' 등이 귀에 쏙 들어왔다. 

 

이날은 뮤지컬 <로빈> 싱어롱데이가 열려서 커튼콜 후에 현지루나와 현선레온의 깜찍한 케미를 한 번 더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가사지에 쓰여진 '생일케이크 reprise'에 맞춰 현지루나와 현선레온을 따라 귭로빈의 생일을 축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점도 재밌었다. 

 

가사지 뿐만 아니라 티켓 수령할 때 캐스트별 굿바이엽서까지 증정받게 돼 이 점도 흡족했다. 뮤지컬 <로빈> 재연은 2023년 올해 들어 관극하면서 제일 많이 울면서 본 공연이 되었다. 4월 기준으로 아직까지는.

 

덧붙여 2023년 4월 9일 일요일, 오늘은 뮤지컬 <로빈> 마지막 공연이 있는 날이다. 막공은 못 보지만, 재연 자첫자막이 뜻깊은 순간을 경험하게 했으니 후회없이 멋지게 보내주려고 한다. 눈물은 좀 나겠지만, 그래도 웃으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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