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적 색감에 미스터리 판타지를 더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동화적 색감에 미스터리 판타지를 더함으로써 풍부한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주브로브카에 자리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는, 액자식 구성을 통하여 현재에서 과거로, 그보다 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실체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함에 따라 볼수록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도 남았다.

 

 

어느 한겨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제목의 책을 쥔 소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책을 집필한 작가가 갑자기 나타나 젊은 시절에 들었던 얘기를 들려주겠노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하여 알프스 산자락의 네벨스바드에 위치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 제로 무스타파가 겪었던 모험담이 눈 앞에 드러나며 본격적인 작품의 서막이 열렸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로 무스타파가 실제로 경험한 1932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작가가 제로와 대화를 나누며 호텔에서 시간을 보낸 건 1968년, 관객이 작가의 말에 귀기울이는 시점은 1985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덕분에 각기 다른 3개의 시대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액자식 구성의 묘미가 남달랐다.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D가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는 로비보이 제로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려 애쓴다. 그리하여 마담D로부터 세금이 면제된 채로 증여받은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지켜냄과 동시에 유산을 노리는 아들 드미트리가 고용한 킬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두 사람의 고군분투가 기상천외한 순간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하며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진정한 콘시어지 무슈 구스타브와의 시간을 회상하며 들려준 지난 날의 무용담 속에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더불어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공간에 대한 향수와 애달픔이 곳곳에서 표출돼 마음이 시큰거렸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한창일 때 발생한 요절복통 사건사고가 속도감 넘치게 진행되는 동안 적당한 위트가 녹아들어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고,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 영상미에도 푹 빠져들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따른 절망을 감수해야만 했으므로, 살아남은 자가 계속해서 품에 안고 견뎌야 하는 공허함 또한 제대로 표현돼 이에 상응하는 삶의 희로애락이 전해져 오는 순간이 상당했음을 밝힌다. 

 

구스타브와 제로를 위협하는 마담D의 아들 드미트리의 포스도 기대 이상이었다. 드미트리의 수하로 인해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과 계속되는 추적으로 말미암아 진퇴양난의 순간에 놓일 때가 상당했는데, 뛰어난 기지와 전략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와 함께 멘들스 직원으로 멋진 활약을 뽐낸 아가사의 존재감 역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제로와 사랑을 쌓아가며 위험을 공유하게 된 처지에서 용기있는 결단력으로 도움을 주는 일이 부지기수라 눈여겨 볼만 했다. 담대한 행동력과 현명함으로 다져진 아가사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결론적으로, 아가사 역의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참 좋았다. 

 

 

덧붙여, 멘들 빵집의 디저트와 포장박스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품으로 눈길을 잡아끌었다. 특히 영롱함을 선보인 멘들스 케이크, 코르티잔 오 쇼콜라의 비주얼은 환상적이었다. 이 작품의 동화적 색채와도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눈 앞에 있다고 해도 먹기가 아깝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결국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맛을 보게 될 거라는 걸 알지만. 

 

여러 개의 챕터로 구성됨으로써 한 편의 에피소드마다 시작에 앞서 이름 붙여진 타이틀을 만나보는 일이 가능했는데, 덕택에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구스타브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자 발 벗고 나선 십자 열쇠 협회 이야기가 유쾌함을 자아냈다. 화면 비율로 각기 다른 시대를 표현한 부분도 감명깊었다. 

 

구스타브와 제로의 깊은 우정 역시도 아름다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상징이 곧 구스타브임을, 잔혹한 세상 속 한 줄기 희망 역시도 구스타브임을 일깨주는 스토리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눈을 홀리는 색감과 스피디한 전개 속에 만만치 않은 생의 여정을 담아냄에 따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우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영화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다. 잔인한 장면의 묘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다채로운 카메라 워킹을 통한 감각적인 구도와 연출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그야말로 대단한 작품이었음을 인정한다.

 

여기에 더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마담D가 살았던 저택, 구스타브가 수감되었던 교도소, 제로와 구스타브가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던 장면, 멘들스 제과점의 케이크 박스 안에 둘러싸인 제로와 아가사 등등, 영화 속에 담긴 장소의 인테리어 및 공간의 묘미가 작품의 예술성을 극대화시켜서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슈 구스타브 역의 랄프 파인즈, 마담 D. 역의 틸다 스윈튼, 제로 역의 토니 레볼로리, 아가사 역의 시얼샤 로넌, 드미트리 역의 애드리언 브로디, 조플링 역의 윌렘 대포를 포함한 배우들의 열연이 엄지를 척 치켜들게 도왔다. 그 와중에 랄프 파인즈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속 볼드모트를 연기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돼 깜짝 놀랐다. 젊은 작가 역의 주드 로도 오래간만에 보는 거라 반가웠다. 

 

배우들의 호연과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연출력이 짙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섭섭하다. 

 

제로 무스타파의 기억 속에 남은 무슈 구스타브와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맞닥뜨릴 수 있어 뜻깊은 영화였다.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와도 다름없었던 둘의 깊은 인연이 여전히 같은 곳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를 통해 연결된다는 점이 의미있게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곳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고 해도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으리라. 제로의 이야기를 접한 작가의 손으로 인해 쓰여진 한 권이 책이 위대한 유산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대신해 세상에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모두들 어디에선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